생각해 본다. '나란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AB형... 게자리... INTJ... 회피애착... 또 어떤 단어가 있을까. 한 인간을 '쉽게' 정의해 보려는 수많은 단어들. 그 단어들 사이에서 나는 '게으름'이라는 단어와 계획형이라는 MBTI의 'J'를 나란히 꼽아봤다. '게으른 J형'.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어쩌면 이 단어가 나 스스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게으른 계획주의자.
우선 계획주의자의 삶에 대해 말해 볼까. 내 머릿속엔 늘 두 개의 시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현재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였다. 나머지 하나는 방학 계획표와 비슷한 형태의 것. 이 시계는 늘 오늘 하루의 남은 시간과 할 일, 할 일에 따른 예상소요시간을 정리하며 굴러가고 있었다. 책상, 핸드폰 등 눈길이 가는 곳에는 할 일 리스트가 올려져 있고, 하나의 일과를 처리하면 체크, 체크 후에는 남은 할 일들을 보며 다시 시간 계획을 세우곤 했다. 계획에 질질 끌려다니는 삶이라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기에, J라는 MBTI 결과는 아주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의아한 건, 이렇게나 공을 들여 계획을 세우면서도 그걸 다 지켜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부끄럽지만 평생이 그랬다. 하루를 헐떡이며 보내야 다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계획을 빡빡하게 세워두고는, 할 일 리스트의 마지막 몇 개쯤은 매일매일 다음날로 미뤄버린다. 거 참 희한한 성격이라고 스스로 생각도 하고, 계획을 안 세우면 스트레스도 줄어들 것임을 나도 알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나는 계획 세우기를 멈추지 못했다. 대체,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살면서 생긴 관성을 쉽게 바꿀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오늘도 나는 여기저기에 할 일을 메모해 두고, 계획을 세우고, 일상 중간중간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리스트 마지막의 몇 개는 내일로 미루며 살고 있다. 매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이런 또라이 같은 성격의 단점은 무궁무진하겠지만, 확실한 단점 하나를 꼽자면 늘 쫓기는 기분을 느낀다는 거 아닐까. 몸이 게으름을 피우며 한가하게 늘어져 있는 그 순간마다, 마음이 불쑥 몸에게 소리를 지른다.
"움직여, 몸뚱이야. 시간이 이렇게나 됐잖아. 매일 다음 날로 넘기는 그 리스트를 끝내라고!"
몸은 또 외친다.
"아오, 좀 쉬자. 만날 그렇게 쫓기면서 어떻게 살아. 귀찮아, 피곤해, 좀 냅둬!"
몸과 마음이 사이가 안 좋은 이런 상황. '마음 편히 휴식' 같은 건, 내겐 꽤나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아무것도 하지 마! 쉬어'하고 명령을 내려도 마음은 좌불안석. '아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계획을 끝내지 못했어'하고 툴툴거리는 형편이랄까.
이런 몸과 마음을 끌어안고 40여 년을 살면서 나름의 노하우도 터득했다. 계획형에겐 계획형 다운 해결방안이 필요한 법. 즉 휴식 자체를 계획에 넣어버리면 되는 거였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기, 하고 정해주면 마음도 더 이상 툴툴거리지 못했다. 정해진 계획을 따르는 것뿐이니 몸도 마음도 늘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계획 세우기를 멈춘 채 잔뜩 늘어져 버리는, '끝이 정해진' 이런 휴식이 나는 좋았다.
생각을 더 이어가 볼까. 기차, 버스 심지어 장거리 비행까지 대중교통에 몸을 싣는 걸 좋아하는 스스로가 이해되기도 했다. 다리는 퉁퉁 붓고 몸은 고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 안에서는 마음이 편하달까. 대중교통의 목적은? 도착지까지의 무사 이동이겠지.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가만히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차 버스 비행기가 알아서 나를 이동시켜 줄 것이니, 내가 할 일이란 그저 이동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만 생각하면 되는 거였다. 그 수동적인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잠이 오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또 잠이 오면 자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내게 허락된 그 무위의 시간이 편했다. 심심하지 않냐고? 심심하면 뭐 어때, 어차피 목적지에 도착하면 심심함도 끝인 걸. 대중교통에 몸을 싣기 전엔 도착 후의 일정을 짜느라 바빴을 테고, 도착 후엔 또 정해진 일정을 수행하느라 바쁠 터였다. 대중교통 안에선? 바쁨과 바쁨 사이를 느끼며 쉴 수 있었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어 그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는 비행기는, 이런 내게 최고의 휴식장소 중 하나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 이런 생각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나는 좋아했다. 사실 이 모든 생각들의 시작은, '나는 왜 점심의 산책을 이렇게나 좋아하는 것일까?'였다. 바람은 산뜻했고 햇볕은 따사로웠던 그날에 '와, 너무 행복해'를 느끼며 발을 뗐고, 이 시간이 왜 좋을까를 생각하다가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어떤 인간일까를 궁금해하다가 대중교통까지, 생각은 마구 뻗어갔다. 산책을 하는 동안 내 몸은 '걷다'와 '생각하다' 두 개의 동사를, 동시에 수행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이 적을 뿐 '생각하다'가 동사인 이유가 이런 순간엔 느껴진다. 다리만큼이나 뇌도 나름은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가면서.
그래, 생각해 보면, 점심의 산책은 대중교통을 타는 시간과 비슷한 것 같다. 12시에 출발해 오후 1시에 끝나는 여정. 출발 전엔 오전의 일과들을 처리했고, 이 1시간의 산책 후에는 다시 오후의 일과들이 이어질 터였다. 이 여정은 순환선에 가까웠다. 출발지-목적지는 회사로 동일했고,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어디를 가든 상관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툭툭.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걷다 보면 툭,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어라, 그 사람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말 마음에 담아둔 줄 몰랐는데 왜 지금 떠오르지?
아, 맞다, 친구한테 연락한다고 했었는데, 오후에 들어가서 카톡 해야겠다.
오늘 아들 일과가 어떻게 되더라.
와, 그날 먹은 그 음식 진짜 맛있었는데.
무작정 걷는 것처럼 생각도 마구마구 가지를 쳐 나갔다. 어차피 1시면 끝날 휴식. 다음 일정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도 없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보렴, 하고 생각도 몸도 마음껏 풀어놓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면 눈앞의 풍경이 새삼스레 들어왔다.
종종 나는 회사 주변 술집거리를 걷곤 했다. 대낮에 사람이 몰리는 상권은 큰길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지만, 내 발걸음이 자주 향했던 곳은 골목골목이 이어지는 술집 거리였다. 낮 12시엔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은 곳. 그곳을 천천히 걸을 때 느껴지는 기이한 차분함이 나는 좋았다. 어젯밤 이곳은 분명 시끌벅적했으리라. 하지만 한낮, 태양이 떠오른 때에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문을 닫은 가게 유리창 안으로 미처 정리되지 못한 테이블도 보였다. 정리할 시간도 없었던 거면 어젯밤 늦게까지 손님들이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가게 사장님이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어젯밤의 모습을 홀로 상상하는 게 즐거웠다. 문 앞에 적혀 있는 가게 마감시간은 3시. 테이블 위 수저는 3개, 소주병은 보자 보자, 모두 5병?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짠짠 술잔을 부딪히다 새벽 3시 무렵 가게를 나서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러다 보면 내 20대의 날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도 한때는 말이야, 으슥한 시간에 이런 골목에 와서 술을 막 1, 2, 3차를 옮겨가며 막막 마시기도 했었다고. 아이고오, 한때는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어젯밤 활기 넘쳤을 술집거리와 적막함이 감도는 현재 대낮의 거리,
한때는 활기 넘치게 밤새 술을 마시던 그 시절의 나와 현재 대낮에 산책이나 느긋느긋 즐기는 나이 든 나,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어딘가를 걷는 듯한 묘한 느낌을 대낮 술집 거리를 걸을 때면 느끼곤 했다. 이제, 나도 청춘을 그리워할 나이가 된 걸까. 현재의 나는 낮의 세계로 옮겨와 버린 나이 든 사람. 현재 내가 속한 낮의 세계에선 밤이 오면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데, 이 거리는 정반대로 밤이 오면 활기차지리라. 낮의 세계에 살다가 밤의 세계를 쓱 쓱 엿보는 염탐꾼이 된 것처럼 그 거리를 걸어 다녔다.
볕이 특별히 좋은 날엔 회사 앞 야트막한 동산에 오르기도 했었다.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관광객들도 종종 찾는 그 언덕. 그곳의 봄 햇볕은... 어후, 말해 뭐 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에 쏟아지는 봄 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걷다 보면, 심장 저 깊숙한 곳에 묻어둔 사랑이란 것이 퐁퐁퐁퐁 튀어 오르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와, 사랑해. 지구야 사랑해. 벚꽃아 사랑해, 여전히 따뜻한 햇볕 사랑하고, 늙고 병든 내 몸뚱이도 사랑해. 으아, 내 뱃살마저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봄날의 햇볕은 황홀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나왔던 대사가 절로 떠오르곤 했었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냐고? 언덕에서 꽃내음과 함께 봄 햇볕을 맞고 있으면, 아아, 봄날의 곰만큼 네가 좋아, 하는 고백을 수백 번쯤 뱉을 수 있는 기분이 되어버리곤 했다.
가을, 겨울이면 언덕 벤치에 앉아 광합성을 즐길 때도 많았다. 햇볕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참 많이도 울었더랬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그저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면 그 순간 희한하게도 위안을 받았다. 동병상련이랄까. 도통 근원을 알 수 없는 마음이었지만, 이 험악한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는 게 나 혼자는 아니라는 그 감각이, 정말로 내게 큰 위로가 됐었다. 아아, 다들 바쁘게 살고 있어. 손에 커피 한잔을 들고 점심시간을 쪼개서 여기까지 와서 나처럼 햇볕을 '먹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저 사람들도 힘들겠지, 나만 힘든 건 아닐 거야. 다들 사정이 있겠지만 햇볕으로 고속충전을 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 앉아 있다 보면, 다시 오후를 살아낼 힘이 나곤 했었다.
비가 오거나 날이 더울 땐 지하상가 혹은 마트로 들어갔다. 특히 마트는 정말, 최고의 산책코스였다. 마라톤 코스 중간중간 음수대가 마련되어 있듯, 마트 중간중간에는 이 산책에 지친 나를 위한 시식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산책을 하며 시식만 야금야금 이용했다면 마트에 미안한 일이겠지만, 나는 대기업의 유혹을 이겨낼 만큼 굳센 사람이 못 되었다. 간단히 만두를 한 점 얻어먹어볼까, 처음 보는 유제품인데 한 모금해볼까 하고 시식을 하다 보면 자석에 이끌린 듯 점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게 됐었다. "와, 이거 얼마예요?"
직원분이 말해주는 가격이 마음에 든다면 오늘의 산책은 거기서 종료. 뭐 어때, 어차피 1시면 끝날 외출이었다. 특히나 50~70% 할인 중인 밀키트를 발견하면 그날의 산책은 미련 없이 거기서 멈췄다. 점심시간에 저녁고민까지 해결할 수 있는데 망설일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를 한 후 장 본 것들을 낑낑 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산책은 마무리 됐다.
띠띠띠띠. 12시 50분이면 알람이 울렸다. 매일같이 산책을 하면서 생긴 습관. 멍한 상태에 빠져 너무 멀리 걸어갔다가 1시에 맞춰 돌아오지 못한 몇 차례의 산책 이후, 기계의 도움을 받기로 했었다. 무엇을 하고 있든 어디에 있든, 12시 50분 알람이 울리면 회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멍-하게 멈춰 있던 마음에 찰칵-하고 불이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마음이 기지개를 켜며 외쳤다.
'자자, 일할 시간이야. 휴식 끝!!'
무도회를 마치고 12시까지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신데렐라의 마음을 매일매일 느꼈다. 크흑, 얼마나 돌아가기 싫었을까. 심지어! 왕자를 두고서! 엉엉, 얼마나 집에 가기 싫었을까. 1시간의 제한 시간을 지켜야 하는 간헐적 산책자는, 벗겨진 구두를 주울 수도 없었던 신데렐라의 격렬한 아픔을 온마음으로 공감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1시까지는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다. 1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무실은 고요했다. 고요를 뚫고 서둘러 자리에 앉으면, 지난 점심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마치 무도회에 다녀온 느낌이랄까. 술집 거리에서의 시간여행도, 동산에서의 광합성도, 물욕을 가득 채운 쇼핑도, 모두 일장춘몽 같았다. 꿈같은 산책 후에 할 일은? 계획주의자답게 다시 오후의 일과를 헤쳐 나가면 되는 거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리고 일과 틈틈이 멍하게 앉아 생각하는 거였다. 내일은 어디로 걸어가 볼까. 산책을 이렇게나 좋아하는 나란 인간은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