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탕비실에는 온갖 종류의 커피가 구비되어 있었다. K-coffee라 불리는 맥심모카골드와 디카페인 커피, 에스프레소 머신과 핸드드립을 위한 도구들까지, 취향에 맞게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커피를 '이성의 음료'라 했던가. "커피 가게에 가면 정신이 네 배는 더 맑아진다"는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말을 떠올려보면, 이렇게나 다양하게 커피를 구비해두는 회사의 '소망'이 더 와닿긴 했다. 회사는 아마도 카페인의 힘으로 피로곰을 무찌르고, 으깬 두부처럼 널브러져있는 정신을 억지로라도 깨워서 빡 집중해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회사의 배려를 감사히 받아들여 커피를 마셔버린 후, 네 배 아니 여덟 배 더 맑은 정신으로 열일하고 싶은 마음은 나 역시 그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미 '쩔어버린' 몸뚱이였다. 피로곰을 무찌르긴 개뿔. 카페인 투입은 아주 짧은 효력을 발휘할 뿐이었다. 커피 한두모금이 입으로 투여되어 위장으로 뜨끈하게 내려갈 즈음이면 맑은 정신이 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는 순간이면 신기하게도 다시 리셋. 멍-해지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해야할 건? '일'이었다. 출근을 했고 커피까지 마셨고, 오늘 쓸 에너지는 이미 다 쓴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일을 하긴 해야 했다. 월급을 받는 만큼. 그리고 커피를 마신 만큼, 일은 해내야 했다. 17년차 직장인에게 회사일이란, 일종의 농사일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으로 인한 재해가 가끔 벌어질 뿐, 자연 재해 등의 심각한 위기 상황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진짜 농사일과는 차이가 있으리라. 그럼에도 매일매일 꾸준히 할 일이 있다는 점에서, 모든 노동이 비슷한 면이 있는 게 아닐까. 회사가 존재하는 한, 일은 계속 생겨났다. 이번 주 일을 마치고 다음 주가 되면 또 비슷한 분량의 일이 주어질 터였다. 이번주에 2~3배쯤 열심히 일을 해도? 일은 ZERO가 되지 않았고, 다음주가 되면 다시 리셋. 또 비슷한 분량의 일을 해내야 했다. 안타까운 건 매우 열심히 남들보다 열심히 일을 한다해도 월급이 딱히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다행인 건 이런저런 사정으로 적당히 농땡이를 부린다해도 월급이 크게 깎이지는 않는 점이랄까. 몇 해를 직장인으로 살면서 일종의 균형잡기 같은 것을 익히게 됐었다. 중요한 건? 작고 소중한 월급을 지켜가겠다는 꺽이지 않는 마음. 그러니 탈진할 만큼 나 자신을 갈아넣어서도 안됐고, 눈에 띌 만큼 엉망으로 농땡이를 부려서도 안됐다. 적정선에서의 균형잡기.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적정선 어딘가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이 사무실엔 가득 했다. 그들 틈에서 모니터만 노려보며, 나 자신과의 싸움인지 일과의 싸움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배가 고파왔다.
직장인의 하루에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유일한 휴게시간. 이 1시간을 충실히 보내기 위해 나는 누구보다 노력하는 편이었지만, 가끔 그 모든 것들이 귀찮을 때도 있었다. 어우, 걸어다니기도 귀찮아, 밥도 먹기 싫어. 그럴 때면 나는 잠시 고민하다 뚜벅뚜벅 스타벅스로 향했다. 점심을 찾아 헤매이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그만 점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스타벅스로 쇽 숨어들었다. 그리고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서 홀짝 홀짝. 커피를 마시면서 쓸데없이 인스타, 페이스북을 기웃기웃 거리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그저 멍하니 창 밖만 바라봤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는 있었지만 딱히 눈에 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을 뜨고 있을 뿐 무언가를 보는 건 아닌 멍한 상태. 그런 모습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화들짝 놀라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앞서 말했듯 회사 탕비실엔 커피가 넘쳐났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면 회사 안에서도 충분히 '공짜'로 해결할 수 있는 일. 그럼에도 나는, 굳이 신발을 갈아신고 스타벅스까지 힘겹게 걸어와서 돈을 쓰고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였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회사에서 나오고 싶어서'가 처음 떠오른 대답이었다. 단지 휴식을 위해서라면 조용한 사무실에 머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자리에 있는 나에게 누군가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고, 자리에 앉아 엎드려있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며 낄낄거려도 점심시간에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기를 택했다. 매일매일. 콧구멍에 신선한 바람이 좀 들어가야, 1시간뿐인 휴게시간을 알뜰히 즐기는 것 같았으니까. 피곤해서 걷기도 싫고 밥도 먹기 싫은 상태임에도 바깥 공기는 쐬고 싶었다.
자, 그럼 왜, 이런 좀비같은 상태로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굳이 커피숍을 찾아오는 걸까? 스타벅스 커피가 땡겨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평소에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스타벅스에 마땅한 자리가 없다면 근처 다른 곳으로 미련없이 발걸음을 옮겼으니까. 열심히 스타벅스에 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딱히 커피가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커피숍에 커피를 마시러 온 게 아니면 나는 왜 그곳을 찾는 걸까. 의문은 몇 번의 스타벅스 재방문 이후 풀렸다. 그곳에 앉아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곰곰 되돌아보곤 답을 깨달았달까. 그곳에서 나는, 앞서 말했듯 정말 적극적으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 쓸모있는 일이라고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인터넷 기사 한 줄조차 읽지 않았고, 강아지고양이 동영상 같은 것들만 골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고 귀여워라. 그러다 그마저도 귀찮아지면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고 그저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과 차들을 바라봤다.
회사에서는 이렇게까지 마음 편히 늘어져 있을 수가 없었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신경써야 했고, 누군가가 "점심은?"하고 말을 걸면 마땅한 설명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회사는 매우 조용했다. 스타벅스에서는?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았다. 다들 바빴다. 혼자 있는 사람들은 핸드폰이나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일행이 있는 이들은 그들끼리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도' 아니었다. 다수 속에서 나는 익명의 존재 24번 엑스트라쯤이 되어 있었고, 세상만사에서 떨어져나온 듯한 그 기분이 나를 엄청나게 편안하게 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적당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엄폐물이 되어, 서로를 숨겨주고 있다는 느낌.
내가 만약 커피를 사지 않고 그곳에 있었다면, 직원 누군가는 나를 신경쓰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4500원을 내고 산 커피 한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들의 신경에서도 멀어질 수 있었다. 4500원은 커피 한 잔의 가격이기도 했지만 그 가격에는 '손님 역할'을 누려도 되는 자격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손님 역할? 앉아서 커피만 홀짝이면 끝. 절대적인 수동성이랄까. 절대적으로 수동적일 수 있는 손님 역할을 나는 매우 즐기고 있는 거였다.
돌아보면, 현재 내 삶에는 스타벅스 같은 공간이 없었다. 내가 머무는 공간 그 모든 곳에는 해야할 일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도 쳐내기 급급하지만 연차가 올라간 만큼 다른 여라가지 일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사람이 모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관계들에 신경도 써야 했고, 적절한 사회성을 발휘해 대화도 해야했다. 17년차 직장인에 걸맞은 모습이 되려 애를 쓰며 행동했다. 그리고 집? 집에서도 할 일이 많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 집의 유일한 어른은 나 하나였기에 오로지 내 몫으로 남겨져 있는 일들이 꽤나 많았다. 퇴근과 동시에 해내야 할 집안일들. 아이의 식사를 챙기고 정리를 하고 숙제와 일정을 함께 만드는 그 모든 것들이 내 일이었다. 아이가 자라면 편해질 거라 예상했지만, 쳇, 웬걸, 오판이었다. 몸은 조금 편해진 것도 같지만 아이의 대인관계와 학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함께 생각하는 건, 꽤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에는 역할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했고, 집에서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자, 그럼 스타벅스에서는? 4500원을 내고 커피를 받아 들어 쏟지 않은 채 자리에 앉으면 끝. 그리고는 멍하니 앉아 있으면 내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거였다. 아, 물론 나올 때의 뒷정리도 포함이겠지. 거 참 생산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지출인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공짜로 해결할 수 있는 카페인을, 굳이 돈을 쓰며 투여하다니. 그리고 앉아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멍 때리기 위해 돈을 쓰다니. 괜한 낭비인가 싶어 줄이려 애도 써봤지만, 가끔 가고 싶은 날엔 '굳이 4500원 아껴서 뭐하나'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사람이 먹고 사는 일에 가성비만 따질 수는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멍 때리고 싶어하는 나 자신에게, 이 정도 여유는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사치스럽다고? 어우, 이 정도 사치는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며 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가끔 스타벅스에 간다. 4500원짜리 손님 역할을 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