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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Oct 13. 2024

나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나

내 은밀한 취미생활에 대하여

어쩌다 글을 쓰게 된 걸까. 지금도 가끔씩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란 인간이여, 어쩌다 이놈의 글이라는 것을 쓰고 싶어 했단 말인가!! 맨땅에 엎드려 허우적거리는 듯한 이 느낌. 문장을 썼다 지웠다 난리를 치고, 그럼에도 뭐가 더 나은 문장인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나 혼자 만족하다가, 고작 이따위 밖에 못 쓰냐며 나 혼자 좌절하다가, 누가 칭찬이라도 해주면 배시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무 반응도 없으면 이런 젠장! 이 시간에 잠이나 자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이놈의 글을!!! 나는 대체 왜 쓰기 시작했던 걸까. 감정 배설이 필요하다고? 먹고 싸는 게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감정 배설에 몇 시간을 들이는 게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이 맞는 걸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무튼 다시,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정하긴 부끄럽지만, 돈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서? 에이, 그럴 리가. 나는 필력은 부족해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었다. 인지도도 없는 사람이 쓰는, 고작 이 정도의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럼 웬 돈이냐고? 뭘 하든 돈이 드는 자본주의 세상이지만, 글을 쓰는 데는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았다. 집에 있는 컴퓨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약간의 전기세, 그 정도만 '투자'하면 하루 종일 노닥노닥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게 내가 하필 글을 택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한 육아 공백. 그 시기에 나는 육아휴직을 했었다. 1년. 당시 1학년이던 아이를 혼자 집에 둘 수는 없었지만 아이 학교는 온/오프라인 수업을 번갈아 하며 엉망진창 널뛰기를 이어갔다. 그 장단에 맞춰 내 생활도 들쑥날쑥. 어쩌다 오프라인 수업이 진행되는 날이 되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멍하게 집에 앉아있곤 했었다. 텅 빈 집, 고요함. 그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 그건 정말 진실이었다. 할 일이 없는 시간을 누려본 적이 없던 나는, 빈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정말로 몰랐다. 쉬면 되지 않냐고? 나도 분명, 그렇게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쉼. 그건 웬만한 정신력으로 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 법이니까. 쉰다고? 육아휴직해서 월급도 안 들어오는데 이혼소송까지 하고 있으면서, 사치스럽게 쉰다고? 나는 그런 여유를 스스로에게 선사할 수 있는 인간이 못 됐다.


가만히 집에 있으면 온갖 걱정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혼소송 결렬되면 어쩌지. 앞으로 애가 비뚤어지면 어쩌지. 나 혼자 애를 키울 수 있나. 수천수백만 가지 생각들이 사람을 들들 볶아댔고,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었지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인 시기에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웠다. 걱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3~4시간. 처음엔 그 시간에 딱 1년만 할 수 있는 부업을 찾았더랬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온라인 부업 같은 게 있을까. 그런 과정에서 어쩌다 알게 된 게 브런치였고, 그놈의 '브런치 작가'라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만만하게 생각하고 몇 편의 글을 써서 보냈고, 두 번 떨어졌다. 그쯤 되니 '하, 이것 봐라?' 하는 오기가 화르륵. 그러면서 글쓰기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한두 편 쓰는 과정에서 느낀 그 재미. 글을 쓰며 몰입하는 그 시간에는 앞날에 대한 걱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어떤 생각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시간이라니. 심지어 돈도 안 들었고, 나가지 않아도 됐고, 허투루 시간을 보낸 건 아니라는 자기 위안까지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내 세계는 커다란 땅굴 같았다. 햇볕은 저 위, 땅 위에서 밝게 빛나는 듯했지만 내 세계에는 닿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땅굴. 저기 위로 올라가곤 싶었지만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던 날들. 심지어 이 땅굴, 내 세계는 우르르 무너지는 중이었다. 가만히 쪼그려 앉아 숨만 쉬어도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리 위에서 흙과 돌이 떨어져 내렸다. 지진이라도 난 듯,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짓눌렀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혼 소송은 지지부진. 아이는 자라고. 텅텅 빈 통장. 기댈 데 없는 친정. 혼자라는 두려움. 그 모든 것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리고 그런 것에 파묻혀버릴 즈음 찾아낸 은신처가 글쓰기였던 것 같다. 매몰을 피하기 위한 몰입이랄까. 당시의 글쓰기는 내게, 그런 의미였다.


그렇게 올린 글에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그 댓글들이 글을 이어 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칭찬이란 거, 말이 가진 힘은 정말 굉장했다. 낯 모르는 이들이 달아주는 칭찬이, 나를 춤추게 했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칭찬은 이렇게나 묵직한 나도 춤추게 만들었다. 살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글이 술술 읽혀요. 글 잘 쓰시네요(..... 와// 쓰면서도 너무나 부끄럽다!! 악!!) 같은 댓글을 받은 날엔 며칠 동안 중력을 느끼지 못했더랬다. 땅굴은 무슨. 칭찬이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땅굴 위로 붕-, 두둥실 떠오른 기분으로 며칠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쓴 글을 모아 2021년 6월 출간 계약을 했다. 당시의 나는 9월 복직을 앞두고 매우 초조한 상태였다. 1년이나 쉬는 동안 한 거라곤 글 쓰는 게 전부였는데, 뭐라도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다. 안 되면 자비출판이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투고를 시작했고 운 좋게도 성공! 첫 책이 나온 건 2022년 2월이었다. 9월 복직 후 정말로 정신없는 일상들을 보내야 했다. 퇴근 후 아이가 잠들고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고쳤다. 그러다 1~2시쯤 잠시 누웠다가 다시 출근, 퇴근 후 아이가 잠들고 나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고치는 생활이 이어졌다. 돌아봐도 분명 피곤했을 일상이지만, 당시엔 육체적으로 고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신이 났달까. 오래 해오던 직장생활에 새로운 일과가 끼어들었다는 건 분명 고된 일이 맞았지만, 희한하게도 전환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일상이 덜 지루했다. 심지어 첫 책 아닌가. 내 글을 담은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설렘, 그리고 이 따위 글로 책을 냈냐는 비난을 들을 것 같은 걱정 때문에 피곤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찐' 출간 이후 내가 느낀 건 두 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책을 낸다고 나라는 인간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 이전까지의 내게, 책을 낸 작가라는 존재의 이미지는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위대한 인류! 지식과 지혜를 가진 우아하고 우수에 찬 그 어떤 엄청난 존재!.... 책을 내도, 나는 그런 위대한 존재가 되진 못했다. 작가는 개뿔. 스스로에게 그런 이름을 붙일 만한 뻔뻔함이 내겐 없었다. 책을 낸 이후의 나는, 마치 스토커 같았다. 책이 세상에 풀려나온 그 순간부터 교보문고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렸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는 전국 지점에 있는 책 재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데, 그걸 보는 게 그렇게나 좋았다. 와, 내 책이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어! 세상에!

그리고 그 숫자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데서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아아, 내가 책을 내도 세상은 아무 관심이 없구나. 악플도 관심이라는 연예인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나 공들여 책을 냈는데, 잠도 줄여가며 글을 썼는데, 아무도 사가질 않네? 우와!


그럼에도 내 새끼, 어화둥둥 내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책 아닌가. 녀석이 자랑스럽게 서점에 입고된 순간을 나는 함께 하고 싶었다. 주말까지 기다릴 여력 같은 건 없었다. 녀석이 대구 지점에 입고되던 날, 나는 오전 내내 시계만 노려봤었다. 12시.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튀어 나가 서점으로 달려갔다. 어느 출판사든 책이 완성되면 작가에게 증정본을 보내준다. 1~2권도 아니고 20~30권쯤을 박스에 넣어 소중히 전해주는데, 그렇게 배송받은 책이 우리 집에도 잔뜩 남아있는 상태였다. 교보문고에도 고작 3권 들어온 책이, 우리 집에는 20권이나 있지롱. 헤헤. 아무튼 그럼에도 나는 교보문고 재고를 줄여주기 위해, 기꺼이 서점으로 향했다. 캬, 심지어 지갑을 열 각오도 다지고 있었다. 수학적 사고와 경영자적 사고가 동시에 필요했다. 3권이 들어왔으니까 2권을 한 번에 사가면 될까? 그래야 다시 들어오지 않을까? 흠, 다시 안 들어오면 겨우 1권 남는 건데 그건 남은 녀석이 너무 외롭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일단 1권만 사가고, 더 들어오는지를 지켜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나는 결국 1권만 손에 쥐고 회사로 돌아왔다. 물론 그냥 돌아오진 않았다. 서점 '신간' 코너에 반듯이 누워있는 내 새끼가 너무 자랑스러웠기에 온갖 각도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댔다. 분명 여기서 파는 물건인데, 집에 있는 20권 중 하나를 내가 갖다 둔 것만 같은 희한한 느낌을 받으면서.


글을 쓰다 문득, 수학문제를 내보고 싶어졌다. 이림네 집엔 책이 20권 있었어요. 교보문고에서 오프라인으로 1권을 구매했죠. 그럼 이제 몇 권의 책이 있을까요? 21권? 에이, 이건 상상력이 필요한 수학문제입니다. 오프라인에서 1권을 구매한 이림은 온라인에서는 책을 사지 않았을까요? 예스 24에도, 알라딘에도 책이 올라온 걸요. 어머 신기해, 이거 우리 집에 20권이나 있지만 신기하니까 사봐야겠어. 내 책을 내가 배송받는 진귀한 경험을 사는 거지. 자, 이제 이림네에는 몇 권의 책이 남아있을까요?... 확실한 건 교보문고보다 제가 가진 게 많습니다. 네네.





2022년 6월에는 두 번째 책 계약을 했더랬다. 이번에는 무려! 심지어!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다. 후훗. 1년의 휴직 동안 써뒀던 글들, 브런치에 올려두기만 한 글을 알아서 읽어보시곤 '출간 제안'을 해준 것이었다. 돌아보면, 거 참, 놀라운 일이긴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책을 내도, 인간은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두 번째 책 '결혼해방일지' 발간 후에도 교보문고 홈페이지를 노려보다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점에 갔었다. 캬. 작년에 나온 내 새끼 1권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였다. 첫째 둘째,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였을 때 해야 할 일은? 가족사진을 찍는 것. 서가에 꽂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던 첫째를 꺼내, 신간 코너에 편안히 누워있는 둘째 옆에 놓았다. 치즈- 김치- 찰칵찰칵-.

흠, 이쯤에서 다시 수학 문제를 내볼까요. 이림네 집엔 두 종류 책이 40여 권 있었어요. 교보문고에서 오프라인으로 구매를 하고, 온라인에서도 '어머, 이건 사야 해' 하며 몇 권을 구매했죠. 이제 이림네에는 몇 권의 책이 남아 있을까요? 하하. 역시나. 교보문고보다 내가 가진 게 많다. 분발하라고! 교보문고!


점심 관련 글이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거냐고,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지금 나는, 점심시간 이야기를 핑계로 내 자랑을 하는 중이다. 제가 책을 두 권이나 냈지 뭡니까, 세상에! 마구 으쓱 대며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자면, 지금까지의 직장생활 그러니까 무려 17년 동안 셀 수 없이 수많은 점심시간을 보냈지만 내 책을 영접하러 서점에 간 이 두 번의 날이 가장 짜릿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점심시간을 꼽으라면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직장인의 삶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들이었으니까. 나름은 힘들게 보낸 시간을 엮어낸 글들, 그리고 그 글들을 엮은 책들. 그 책들을 서점에서 만났던 순간은, 스스로에 대한 '뽕'이 가득 차오른 순간으로 선명히 새겨져 있다. 나란 인간 꽤 장하구먼! 했던 경험이랄까.


나는 어쩌면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해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귀한 일요일 시간에 늦잠을 포기하고 굳이 컴퓨터 앞으로 나를 내몰아 글을 쓰는 건, 꽤나 대단한 일인 건 확실한 것 같다. 지난주에 나는 2주 연속 주말 근무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연재글을 업로드하지 않았더랬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아악아악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뭐라고, 뭐 대단한 글 쓴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나 하는 생각도 분명 들었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이 글을 쓰느라 왜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까, 하는 자괴감. 그리고 오늘까지도 내내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왜 글을 쓰는 걸까. 잘 쓰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나는 왜 또 컴퓨터 앞에 앉아버린 걸까.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정답이 무얼까. 정답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글쓰기를 시작한 순간과 지금까지 힘이 되어준 기억들은 선명히 남아있지만, 그것들이 '앞으로 계속'을 이어갈 힘이 되어주긴 부족한 느낌이다. 꾸준히 땔감을 넣어야 동력이 생길 텐데, 지금의 내겐 땔감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달까.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이렇게나 피곤하게 살아가나. 그런 자문을 멈추기가 어렵다. 이쯤 해서 관두고 다른 걸 해야 하나.

다시 묻는다. 그럼 글을 안 쓰면 무얼 하고 싶냐고. 허우적허우적 허공에서 헤매는 듯한 이 순간, 단어의 순서를 바꾸고 조사를 지워보고 다시 읽어보고 문장을 이리저리 고쳐보는 이 순간, 이 몰입의 순간만큼 즐거움을 주는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냐고.

답할 수가 없었다. 짧다면 짧은 마흔둘의 생애. 그동안 나는, '몰입'이라는 단어를 이렇게나 절절히 경험해 본 적도, 낯선 이에게 칭찬을 받은 적도, 출간만큼 성취감을 느낀 적도 없었다. 이 모든 건 글을 썼기에 얻을 수 있었던 재미였다. 이 재밌는 걸 하는데, 굳이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돌아본다.

다시 묻는다. 이유가.. 필요한가? 즐거워서 하는 일에 '왜'라는 이유를 찾아 붙일 이유가 무엇일까. 그냥 좋아서 시작했고 이어오고 있는 건데, 나는 왜 끊임없이 글을 쓰는 이유를 찾으려 하는 걸까. 좋아해. 이만큼 명확한 문장이 어디 있을까. 너를 좋아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을까? 마음이 끌린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하는 그 모든 행위에 어떤 이유가 있단 말인가. 좋아해.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좋아하니까 하는 거지. 글쓰기를 좋아해. 그럼 하면 되지. 나는 왜, 이다지도 열심히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고 싶어했던 걸까.


나는 어쩌면, '일'에 너무 익숙해진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들인 만큼 나오는 성과, 별다른 성과가 없다 해도 앉아있는 시간만큼 나오는 월급. 거기에 너무 길들여져 버린 게 아닐까.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손에 쥘 만한 그 어떤 결과가 쨘-하고 등장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좋아서 시작한 일에 성과를 바라다니. 책을 출간한 건 어쩌다 주어진 결과임에도, 나는 그 성과가 주는 짜릿함에 취해서 자꾸만 어떤 성과만을 바라며 처음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아해. 좋아서 하는 일. 네이버 사전에서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취미'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있었다.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바꿔 말해, 즐겁지 않다면 기꺼이 그만둘 수 있는 일. 다시 묻는다. 나는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즐거운가. 대답은 예스. 연재는 물론 괴로운 것이지만, 아무 성과가 없는 일을 이어가는 건 분명 힘든 일이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이 몰입의 시간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연재를 시작한 것도 나, 성과를 바라는 것도 나, 그런 내가 즐거움을 변질시켜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은 여전히 즐겁다. 글쓰기가. 그렇다면 이 취미를 더더 즐겨도 되지 않을까. 왜라는 이유는 잊고 '좋아해' 이 마음 하나만 품고. 좋아해 너를. 좋아해 글쓰기를. 그리고 좋아. 이러고 있는 내가.


수다를 위한 또다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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