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림 Oct 27. 2024

끼니와 식사, 그 사이 어딘가에서

“혼자 먹는 거면 대충 때우지.”

점심에 대한 전업주부 친구들의 답변은 비슷했다. 휘몰아치는 바쁜 아침, 아이들을 내보내고 폭풍 정리까지 마친 후에 찾아오는 고요한 시간. 이런저런 집안일 사이에 문득 점심시간이 들이닥쳐도 자기 혼자만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들 했다. 냉장고를 스윽 열고 그곳에 있는 무언가를 툭툭 꺼내 한 끼를 때우는 것이 평범한 점심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의 답변을 들으며 '아, 요리를 잘해도 똑같구나'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집에 혼자 있는 상황에서의 식사. 나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쪽이었다. 배고플 때면 냉장고를 열곤 했지만 그 안에 먹을만 한 게 있는 경우도 드물었고, 있다 한들 그것을 꺼내 먹는 것도 귀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단히 허기를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꺼내드는 건 커피 혹은 탄산수. 먹는다는 건 너무 많은 노동이 필요한 일이었다. 재료를 꺼내고 음식의 꼴을 갖춘 무언가를 만들고 식탁 위에 차리고 심지어 치우기까지, 그 모든 걸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주 가끔씩 '그래! 오늘은 나 자신을 좀 먹여보자!' 싶은 날 고기를 구워보기도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명절 행사 정도의 빈도랄까. 그래서 늘 궁금했었다. 내가 요리를 싫어해서 스스로를 먹이는 것조차 귀찮아 하는 것인지, 요리를 잘해도 단 한 명 자신을 위해 밥을 차리는 건 어려운 일인지 알고 싶었다. 역시. 요리를 잘해도, 챙겨 먹는 건 귀찮은 일이 분명한 것 같다. 


이럴 때 어울리는 단어가 '때우다'가 아닐까. '먹다'와는 결이 다른 단어. 사전은 때우다를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하다'로 정의하고 있었다. 어라, 정의를 보다 새삼 깨달았다. 때우다라는 동사와 어울리는 명사가 있다는 걸. 때우다와 세트상품처럼 등장하는 단어는 '끼니'였다. 끼니는 그럼 무슨 뜻이지? 사전적 정의는 단순했다.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또는 그렇게 먹는 일'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라고. 

끼니는 '끼'와 '니'가 결합한 말이라고 했다. 우선 끼. 오늘날 '끼'는 밥때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본래 끼는 '시간의 어떤 순간이나 부분'을 의미하는 '때'와 같은 뜻이었단다. 그럼 니는? 니는 '미곡(米穀)'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다. 밥알처럼 하아얀 꽃이 피는 '이팝나무'를 아시는지. 쌀밥을 순우리말로는 '니'로 표현했고, 밥알같은 저 나무를 '니'자를 넣어 이름 짓고 싶었으나 '니'자는 첫음에 쓸 수가 없어 이팝나무라는 이름이 된 것이었다. 즉 끼니의 니는 하아얀 쌀밥을 의미했고, 결국 '끼니'는 하아얀 쌀밥을 먹는 때라는 말이었다. 우리 조상님들의 쌀밥 사랑이란 이다지도 엄청난 것이었다. 밥을 먹어야 끼니 인정. 밥이 아닌 고기나 과일 등은 끼니로 인정되지 아니한 거다. 하긴, 음식을 굶는 것도 '곡기를 끊는다'고 표현할 정도니까. 


곡기를 끊는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글에 썼듯, 내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버지는 아주아주 올곧고 굳센 경지로 일평생 뚝심있게 술을 마시다가 마침내 술을 끊으셨더랬다. 2~3년의 단주 시기가 지나고 평화롭게 '남들처럼' 늙어가시리라 기대했지만 웬 걸. 서울로 문상을 가시던 아버지는 기차역에서 넘어지셨고, 섬망이 심했고, 병원생활이 길어지면서 거동이 어려울 만큼 빠르게 시들어갔다. 술이 범인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끊어냈지만, 오랜 세월 몸 속에 쌓인 알코올은 아버지를 놓아주지 않았다. 축적된 알코올은 뇌를 손상시켰고,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몸은 다시 일어설 만큼 힘을 내지 못했다. 


아무튼 아버지의 병원생활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었다. 끝이 언제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기에, 아버지의 집 역시 황망히 주인을 기다려야만 했다. 창문은 어찌해뒀는지, 가스벨브는 잠겼는지, 냉장고에 썩어가는 건 없는지 등을 확인하려 아버지의 집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열어본 냉장고. 그곳에는 커다란 김치통 두 개가 들어있었다. 그것말고는 음식이라 부를 만한 것도 거의 없었다. 텅텅 빈 냉장고에 김치통 두 개. 밥과 김치만 드셨나, 하는 의문을 가지며 김치통을 하나씩 열어봤었다. 하나의 김치통에 들어있는 건 마늘 장아찌였다. 라면 정도만 겨우 끓이던 분이니 직접 담갔을 리는 없었다. 아마도 반찬집에서 한 번에 가득 사서 쟁여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통 하나. 그곳에는 파프리카들이 가득 했다. 노랑 주황 빨강 알록달록 섞여 있는 녀석들은 꼭지와 씨는 몽땅 뗀 모습으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아마도 바로바로 꺼내 먹기엔 이렇게 해두는 쪽이 편했으리라. 다만 그것을 먹어줄 이가 사라졌을 뿐. 녀석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며 형형색색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마늘과 파프리카. 그 둘이 가득 든 냉장고를 보며,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나눴던 전화통화가 절로 떠올랐었다. 하루 종일 TV를 끼고 사시던 아버지가 주로 보신 건 가요 프로그램과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이었다. 이런저런 채널에서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것들을 돌려보셨다. 그러던 어느날 깨달으신 거였다. 온갖 TV 프로그램에서 배웠다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해주는 식재료가 있다는 것을. 항암에도 좋고 면역력에도 좋고, 또 뭐였더라. 아무튼 방송 때마다 이런저런 식재료 추천이 이어졌는데, 마늘과 파프리카가 그 무렵 TV에 자꾸 나온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렇다면 마늘과 파프리카를 꾸준히 챙겨먹으면 몸에 좋겠군'하고 생각하신듯 했다.  그리고 추천 식재료의 핵심을 깨달으신 그 순간, 바로 내게 전화를 하셨었다. 본인이 알게 된 그 놀라운 정보를 나눠주고 싶으셔서.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마늘과 파프리카의 효능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시곤 꼭 챙겨먹으라고 덧붙이셨다.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 냉장고 상태를 보건데 아버지는 아마도 한참동안 마늘과 파프리카를 주식으로 드셨던 것 같았다. 밥솥에는 사용 흔적이 없었다. 남아있는 밥알도 없었고 전선조차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 냉장고 앞에서 나는 무너졌었다. 단 하나의 생각만 떠올랐었다. 미리 챙겼더라면 어땠을까. TV를 보시다 혼자 깨달은 '비법 식재료'를, 신이 나서 알려주셨던 아버지였다. 그걸 챙겨 먹으라며 그렇게나 여러 번 얘기하셨었는데, 나는 왜 묻질 않았을까. 당신은 무엇을 드셨냐고. 마늘과 파프리카가 좋은 건 알겠는데, 이 전화를 거신 아버지는 무엇을 드셨냐고 챙기질 않았었다. 많고 많은 가게들에서 반찬 하나라도 배달시켜 드렸더라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식사를 조금이라도 더 채워드렸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을까. 글쎄. 아무튼 나는 그러질 못했고, 모든 상황은 다 끝이 났다. 


아버지의 마지막 끼니들은 분명 내게 상처로 남겨져 있다. 파프리카와 마늘을 드시던 아버지는 입원하셨고 몇 년간 병원밥만 드시다, 나머지 해에는 허옇고 멀건 죽만 드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끼니라기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음식들. 그 끼니들을 떠올리며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글을 쓰는 지금은 일요일 오전 11시. 방금 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시계를 봤고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는 아주 또렷이 생각했다. '오늘 점심은 또 뭘로 때우지?'

피식 웃음이 난다. 흘러간 과거의 아픔에 눈물 흘리면서도, 당장 지금의 내게 뭘 먹일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런 인간이라니. 역시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삶이란 건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가슴 깊숙한 곳에 품고 사는 게 한없이 아픈 기억이라 한들, 당장 다가오는 내 끼니를 더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기억이 허기를 채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눈물까지 흘려버린 몸뚱이는 더 큰 공허를 느끼고 있으니까. 오늘 점심은 뭘로 때울까.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이전 13화 나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