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너를 위하여 [1부 12월 12일 : 실패하다]
백 년째 출간되지 못한 원고에 먼지가 쌓여간다. 마치 표지처럼. 억겁의 세월을 뚫고 기어이 살아 돌아온 작가는 자신의 미완성을 지그시 바라본다. 손가락을 들어 두툼한 더께 위에 이름을 적어본다. 컴컴한 방안에 먼지가 흩날린다. 초라한 티끌. 버젓이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존재. 노인은 문질러 이름을 지워버린다. 닦아도 여전히 더러운 이름, 아니 원고… 얼룩진 꼴이 못내 하찮다. 용기를 내 첫 장을 펼쳐든다. 더 많은 먼지가 허공으로 퍼진다. 들숨에 파고들어 늙은 폐를 쑤신다. 토하듯 마른 기침을 쏟아내는 병든 몸. 끈질기고 끈질기다.
커튼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민다. 햇살이 만들어낸 길 위에서 먼지들이 춤을 춘다. 부유하는 자태가 우아하기 그지없다. 마치 보석처럼. 토성의 고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사내는 뒤늦게 깨닫는다. 마침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image_©Helene Be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