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너를 위하여 [1부 12월 12일 : 실패하다]
괴질에 걸린 사내가 있었다. 수시로 살갗에 진물이 흘러 악취가 진동했다. 소문을 좇아 큰 병원까지 찾았지만 어느 의사도 고치지 못했다. 치료는커녕 진단조차 내리지 못했다. 다른 이에게는 남자의 병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만이 느끼는 고통.
환각이 아닐까 모든 것을 의심했지만, 오감을 잠식한 괴질의 증상은 너무도 생생했다.
문드러지는 육신과 고약한 냄새가 부끄러웠던 사내는 검은 비닐로 온몸을 칭칭 감았다. 이전까지는 누구도 남자의 이상을 알지 못했으나, 그 기괴한 모습에 주변 사람 모두가 눈치채고 말았다. 우려와 달리 미치광이로 소문난 그에게서 하나, 둘 떠나갔다. 가족들마저 사내를 모른 체했다.
숨고 싶었다. 존재를 드러내는 한낮의 햇빛으로부터, 지옥이라 불리는 타인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문을 잠그고 암막으로 창을 가린 채, 스스로를 어둠 속에 매장했다. 설죽은 상태로 긴 잠을 청했다. 수면이 고여 영면이 되기를 긴히 바라며.
봄.
여름.
가을.
겨울.
몇 번의 계절이 지났지만, 사내는 여전히 아팠다. 아파야 했다.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을 테니. 낭비한 목숨과 탕진한 세월을 조금이나마.
똑똑.
누군가 현관을 두드렸다.
똑똑.
무시하려 했지만 집요하게 두드렸다.
똑똑.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하지만 현관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해 편지 한 통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도망자의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보다 조심스레 봉투를 주웠다. 거기에는 승차권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목적지 : [다시]역
표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부자리에 누워 가져온 승차권을 만지작거렸다. 누구일까. 장난일까. 가능할까.
사내에게 희망은 괴질이나 다름 없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자신조차 불신하게 만드는, 가능성에 매여 목을 달지도 못하게 하는 저주.
남자는 봉투를 구겨 던져버리고 눈을 감았다.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짠 내 가득한 베개를 또다시 적시는 피 같은 눈물.
한 달이 지났다.
놀랍게도 사내의 손에는 외투가 들려 있었다. 벌레 같은 삶을 끝낼 때가 왔다고, 목적지에서 기다리는 것이 황천인지 소생인지는 가보면 알게 될 터.
집을 나서는 길, 겨울바람이 욕설처럼 매서웠다.
정류장에 도착해 [다시]행 버스를 기다렸다. 정각이 되자 차량이 도착했다. 옷깃에 묻은 추위를 털어내며 빠르게 올라섰다. 버스 안은 남녀노소로 만원이었다. 겁이 났다. 행여 괴질을 들킬까 가슴을 졸였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눈에 띄지 않도록 영혼까지 작게 모았다. 숨조차 아꼈다.
잠시 후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이 그립고도 낯설었다.
누워 지낸지 너무 오래였을까. 이내 멀미가 시작되었다. 내장부터 솟구치는 울렁거림이 식도를 타고 뇌까지 번져 올랐다.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할 것만 같았다. 급하게 창문을 열어 재꼈다. 그러나 봇물처럼 들이닥치는 찬바람에도 코끝만 시릴 뿐 멀미는 멈추지 않았다.
사내는 후회를 씹기 시작했다. 가만히 누워 썩어 죽을 것을. 왜 기어 나와 사서 고생을 할까.
멀미가 머리 꼭지까지 차올랐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내리고 싶었다. 아니, 내려야 했다.
순간, 누군가 사내의 팔을 흔든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옆자리에 앉은 꼬마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주섬주섬 알사탕을 꺼내 자랑하듯 남자에게 내민다.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끔벅끔벅 바라만 보니, 사내의 눈앞까지 사탕을 들이댄다.
!?
그는 반사적으로 밀어냈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의 무릎 위로 사탕을 던진다. 그러고는 제 어미의 품에 돌아가 천진하게 웃는다.
…
사내는 조심스레 사탕을 들어 껍질을 벗겼다. 이유식을 처음 먹는 아기처럼 천천히 사탕을 입에 물었다. 이리저리 굴려가며 단맛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요동치던 멀미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고 싶었다. 하여 계속해 버스를 타고, 괜찮다면 목적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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