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가난한 너를 위하여 [2부 4월 4일]

by 성냥팔이 소년


홀로 다리를 건넌다. 밤하늘에 박힌 반쪽짜리 달이 꽤나 발그레하다. 흐르는 강물 위로 아른아른 윤슬이 퍼진다. 사이렌의 손짓처럼 나를 홀린다. 걸음을 멈추고 반짝이는 물결을 관찰했다.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어 다리 아래로 있는 힘껏 몸을 기울였다.


「멈춰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앳된 여자. 거침없이 몸을 던지는 바람에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뭡니까?」


「제발 포기하지 마세요.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붉어진 얼굴로 나에게 외친다.


아… 죽으려는 줄 알았구나.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손을 내밀어 소녀를 일으켰다.


「실망시켜 미안한데, 아니에요.」


「네?」


다리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저 강물에 비친 물비늘을 찾던 중이었어요. 모처럼 달빛이 고와서.」


안도와 민망함이 뒤엉킨 여자의 표정이 무척이나 비극적이다. 영화 같은 이 장면, 익숙한 기시감이 드는데.


고등학생 때였다. 외톨이였던 나의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학교 옥상에 올라 독서를 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을 피해 몰래 책을 읽고 있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릴 즈음 여자애 하나가 나타났다.


난간에 올라서서 뛰어내릴까 말까 망설이는 듯했다. 녹슨 하늘을 보며 서럽게 훌쩍이다 구석진 나를 발견하고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했다.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지만, 그러려니 다시금 활자를 탐했다.


아이는 성난 목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사람이 죽겠다는데 보고만 있니?」


「먼저 가. 이 책 끝내고 따라갈게.」


「나쁜 새끼.」


「알아, 다들 미친놈이래.」


씩씩대는 걸음으로 다가와 나의 책을 낚아채갔다. 어찌할 틈도 없이 건물 밖으로 던져버렸다. 내가 벌떡 일어서자 부리나케 계단으로 달아났다.


그 시절의 나는, 낡아빠진 유서를 품고 다니던 나는, 여자애가 화내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잖아. 뭐… 슬픔이여 안녕이라는데, 굳이 말려야 해?’


나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만큼 위태로운 영혼이었기에, 그따위 멍청한 대꾸를 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하늘을 날지 않았다.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마주칠 때마다 아는 척을 했다. 심지어 졸업식에서는 자살 소동이 있던 날 잃어버린 책을 돌려주었다.


「고마웠어. 아직 살아있네, 우리들…」

뜻 모를 인사와 함께.


세치 혀로 자신의 등을 떠민 자에게 보여준 마지막 미소는, 적이 아닌 동지에 대한 그것이었다. 그녀가 책을 빼앗았던 까닭은, 나를 구하기 위함이었을까. 어쩌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한 잔씩 나누었다. 묻지도 않은 사정을 초면에게 털어놓는다.


「사실은 제가 죽으려고 했어요. 진심이었다면 저 역시 뛰어들어야 했는데, 우습게도 살고 싶었나 봐요.」


「죽고 싶다는 말, 더는 이렇게 살기 싫다는 의미잖아요. 잘 살고 싶다는 외침… 앞이 캄캄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뿐이네요.」


「저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학생과 헤어진 후 다시금 길을 걸었다. 뜻하지 않게 목숨 둘을 살려냈으니,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저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나의 이마에 새겨놓으신 주홍빛 낙인을 그만 거두어주셨으면. 물론 그들이 네 생명을 구원하였다, 말씀하시겠지만.


소매를 들어 시각을 확인하니, 때마침 네 시 사십사 분. 어스름한 박명의 시간이다. 재인은 박명이니, 어서 여기를 떠나야지.




1-15.©Grażyna Smalej.JPG

image_©Grażyna Smalej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4화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