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에 말아먹을

가난한 너를 위하여 [1부 12월 12일 : 실패하다]

by 성냥팔이 소년


가져간 원고를 돌려받았다.


「가난하고 음울한 남자의 이야기는 아무도 읽지 않아요.」


편집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사형선고를 했다. 출판사를 나서자 더러운 쓰레기통이 나를 기다린다. 미련 없이 원고를 던져 넣었다. 더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걷고 싶었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고 걸었다. 분명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아끼는 길 위에 서있었다. 강점기 침략자들이 놓았다는 오래된 도로. 옛 영화가 사라진 빈 거리에는 매서운 바람만 바삐 오간다. 걷다 보니 그 꼴이 내 꼴 같아 기분이 착잡해졌다. 걷다 보니 그 꼴이 내 꼴 같아 은근한 위로가 된다.


한참을 서성이다 자주 가던 단골 가게에 발을 넣었다. 일꾼 두엇이 늦은 점심에 반주를 들고 있다. 그들을 피해 후미진 구석에 자리를 잡으니, 금세 백반 한상이 내 앞에 놓인다. 어떻게든 더 내어주려 층층이 포개진 접시들. 오천 원 한 장에 차려진 반찬의 가짓수가 가히 건축적이다. 매콤하게 조려낸 꽁치 두 토막에 갖가지 나물 무침, 푹신 끓여 흐물해진 김치찌개와 구수한 숭늉까지. 돌아갈 곳을 잃은 나에게 고향이 있었다면 이런 차림을 받았겠지. 밥술을 들기도 전, 이미 속은 뜨시고.


허- 그분들, 약주가 과했는지 얼큰해진 목소리가 사방팔방 꼬부라져 날아다닌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그들의 속사정을 모두가 알아채고야 만다. 소주에 무엇을 말아먹을지 궁리를 하는데.


「쥐약은 소용읎다. 두 번이나 삼켜도 징하게 살더만. 양잿물이 낫다고.」


「무에? 제초제가 한방이라. 그기 최고라.」


허풍인지 주정인지 모를 그들의 취중 모의가 어찌나 서글프게 들리던지. 모처럼 마주한 맛난 밥을 꾸역꾸역 삼키게 한다.


사는 게 그리 힘드오.


잠시 후 무리는 멱살잡이 같은 어깨동무를 걸치고 식당을 떠났다. 남겨진 상에는 마시고 난 술병들이 고아처럼 버려져.


그들 옆에서 홀로 식사를 하던 노인이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온전히 서지도 못하고 기역 자로 걸어가 반쯤 남은 소주를 슬그머니 챙긴다. 자리로 돌아와 남은 밥에 소주를 붓는다. 툭툭, 무심히 술에 밥을 만다. 성치 않은 치아로 오물거리는 모양새. 살기 위해 씹는다는 듯, 아니 남은 삶을 애써 삼키듯 그렇게.


사는 게 그리 힘드오.


결국 나는, 장발장의 그림자를 뒤집어쓴 채, 서둘러 도망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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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_©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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