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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Jun 23. 2024

01. 창조에서 보여지는 삶의 원리, 하나 됨

사람이란 존재가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상황을 살펴보면 ’함께‘라는 키워드가 보인다.


사람이란 존재를 만들기로 작정하실 때도 함께 논의하시고 함께 결정하시고 함께 실행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창세기 1장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도 남자와 여자로, 각기 다른 존재로 만드셨지만 둘을 하나로 보아 ‘사람’이라고 칭하셨다.

즉 사람은 독립된 존재지만 모여 함께함으로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셔야 하는 이유와 만드시는 과정을 보면 이런 의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창세기 2장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해 돕는 베필을 지으신다 하신다.

얼핏 여자는 남자를 돕는 존재로 생각할 수도 있는 말씀이지만 남자 혼자로는 온전치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은 현재 주변의 남자들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분명 많이 모자라다.

남자만 그런가? 여자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의 성향적 특성을 보면 그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분명 모자라 보이는 남자의 그 무엇을 써먹을 데가 있다.

그렇게 사람은 함께함으로 온전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함께하면 완전해진다고 정답처럼 말하고 싶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가능성이 커진다 정도가 딱 적당한 표현일 듯싶다.


반면 함께하지 않으면 온전해질 가능성은 아쉽게도 0에 수렴한다.


여자를 만드시는 과정에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시는 것을 통해서도 여자를 단순히 돕는 존재가 아닌 둘이 온전히 하나임을 전제로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자를 처음 본 아담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자신과 여자를 격하게 동일시한다.


’함께‘라는 말과 그 말의 의미는 단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만드신 세상에 대해서도 함께하며 누리고 다스려 보살필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하며, 만드신 모든 것과 함께 하길 바라신다.


함께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님이 먼저 만들어 베풀어주신 우주와 지구와 그 안의 자연이 없으면 인간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자라는 존재만으로, 여자라는 존재만으로 각각 살아갈 수도 없다.

또한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사람이 혼자 존재하고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이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를 사람들은 종종 망각한다.

마치 나 혼자서도 살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간다. 다 필요 없고 내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아니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는 듯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에 온 힘을 쏱는다.


하나 더는 하나가 됨의 조건에 대해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 됨의 조건은 무엇일까?

대부분 ’ 같음‘을 내세운다. 나와 같아 잘 맞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고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하나가 되는 전제 조건은 나와 같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다름이다. 정확히는 모든 사람은 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성장 과정이 다르고, 경험치가 다르며, 그러므로 성향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다. 때문에 같은 문제 마주해도 그 문제를 대응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저 사람과 내가 함께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다름이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로 작용한다.

최근엔 나와 다름이 틀린 것으로 까지 생각하는 경향은 크게 줄어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서로 다름이 대립할 때는 서로를 향해 네가 틀렸다, 잘못됐다며 비난하게 되고 그렇게 갈라서 함께 할 수 없음을 종종 확인하기도 한다.


어리석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면 그 함께하는 다양함 만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많아질 텐데 말이다.

그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될 가능은 나 혼자 만의 또는 나와 생각이 같은 그 누군가와의 합의된 하나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그 다양함 만큼의 배수로 커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능력을 꼽으라면 단연코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일 테다.


세상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구는 것이다.


하나님은 함께 하는 것을 전제로 세상을 만드셨음을 기억하자.

전혀 다른 존재인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하나로 묶어 사람이라 칭하신 것을 기억하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온갖 동물과 식물을 만드심으로 그 각각이 제 역할을 감당해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 들 아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와 경쟁하며 아등바등 살아야 할 것이고,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수용하고 받아 드리는 순간 그 다양한 능력들이 가능성이 되어 더 큰 가치를 더 많이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음이다.


그러므로 함께함을 고민하고 그 방법을 찾고배워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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