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 바퀴_대서양 로드 트립 14
뉴저지 남쪽 끝 케이프 메이 (Cape May)로 간다. 대서양과 델라웨어 만 (Delaware Bay)이 만나는 위치에 절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케이프 메이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해변 휴양지다. 바닷가에 서면 1859년에 세워진, 바다의 파수꾼이며 마을의 상징인 훤칠한 등대가 보인다.
케이프 메이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위험과 나란히 있었다. 이곳 앞바다는 ‘대서양의 무덤’으로 불리며 수많은 배가 안개와 폭풍에 사라졌다. GPS 등 인공위성에 의존해 방향과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현대 기술이 없던 시절, 등대는 뱃사람들에게 희망의 불빛 (Beacon of Hope)이었다
또한 여느 다른 등대와 마찬가지로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와 가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고된 삶을 견뎌야 했다. 199개의 철제 계단을 오르며 무거운 등유를 나르고, 짙은 안개가 끼면 밤새 안개 경적을 울리며 배들을 지켜야 했다.
|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등대 옆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을 막기 위해 1942년에 세운 콘크리트 벙커가 남아 있어, 평화로운 해변에도 한때 경계와 긴장이 존재했음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날인 1945년 5월 8일, 케이프 메이 근처까지 침투했던 독일의 잠수함 (U-858)이 미군에 투항하여 1945년 5월 10일 케이프 메이 맞은편 델라웨어 케이프 헬로펜 (Cape Helopen)에 끌려왔다. 독일의 패망과 케이프 메이의 전략적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는 극적인 사건이다.
잠수함은 호위함에 이끌려 델라웨어만으로 들어왔고, 주민들과 학생들까지도 포로 함정을 직접 둘러보았다. 상공에서는 비행선과 초계기가 원을 그리며 감시했고, 이는 하늘이 바다 아래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상징이 되었다. 이 순간 케이프 메이는 단순한 해변 휴양지를 넘어, 국가를 지킨 파수꾼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얻게 되었다.
| 산업의 중심지
오늘날 케이프 메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단어는 빅토리아식 건물들과 멋진 바다가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지역은 델라웨어 만과 이어지는 델라웨어 강을 따라 윌밍턴 (Wilmington)과 필라델피아로 들어가는 바다 관문에 자리한 천연의 위치 덕분에 여러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7~18C에는 롱아일랜드와 뉴잉글랜드에서 내려온 포경꾼들이 오늘날 뉴저지 타운뱅크 (Town Bank) 일대의 높은 지형에 기지를 세웠다. 고래기름은 조명과 윤활에, 수염뼈는 코르셋과 우산 등 생활용품에 쓰였다. 계절 노동이 가족 정착으로 이어졌고, 배 관련 제작소·잡화점이 들어섰다.
그 이후에는 굴 어장이 번성하여 19세기말에는 철도가 들어서고 수백만 개의 굴과 각종 어획을 필라델피아·뉴욕 등지로 실어 나르며, 포장 창고, 조선소, 해양용품점, 제빙소가 잇달아 들어섰다. 작은 배의 기술과 굴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난 곳, 그 접점이 바로 케이프메이의 부두였다. 일은 계정에 상관없이 계속되었다. 선박 정비, 그물 손질, 장비 제작이 지역의 돈 흐름을 이어 주었다.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케이프메이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돛단배와 마차, 이어 철도와 증기선을 이용해 도시 사람들이 바닷바람과 파도, 사교를 찾아 몰려왔다. 해변휴양지는 상업과 분리된 도피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지역 경제를 돌린 원동력이었다.
| 델라웨어 만의 현관
마지막으로, 케이프 메이 앞 델라웨어 만을 가로지르는 연결이 완성했다. 1964년 <케이프메이–루이스 페리>가 문을 열며 27km 해상 구간이 도로망으로 편입되었고, 사람과 화물이 함께 흐르는 실용적 통로가 되었다.
페리를 타고 델라웨어까지 오가는 여행길은 정말 아름답다. <케이프메이–루이스 페리>는 1964년부터 뉴저지에서 델라웨어만을 오가며 승객과 차량을 실어 나르며, 긴 도로 우회를 편도 85분의 바다 여행으로 바꾸어 주었다.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갑판 위에서 맞는 바닷바람과 파도, 돌고래, 황혼의 일몰은 작은 크루즈 같은 체험을 선사하며, 미 연방 9번 도로의 실용적 연결망이자 지역 주민과 여행객 모두에게 소중한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페리를 타고 델라웨어로 가서, 자동차를 타고 버지니아까지 가면 미국 동부, 남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델라웨어에서 버지니아까지는 체서피크 만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와 해저 터널 (Chesspeak Bay Bridge Tunnel) 이 있기 때문이다.
케이프 메이는 조용한 진리를 가르친다. 아름다움과 산업이 한 마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작은 곶이 어떻게 주(State)의 현관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뉴저지 사람들에게 케이프 메이가 특별한 까닭은 ‘연속성’이다. 계절은 돌고, 케이프 메이에 새들은 다시 오며, 오래된 아름다운 빅토리아 양식 집들은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
케이프 메이는 여러 번 방문했다. 그러나 올 때마다 느끼는 마음은 비슷하다. '잘 왔구나!' 다. 글을 쓰면서도 생각은 한결같다.
| Cape May Lighthouse
| Natural Center Museum (Cape May Point State Park)
| Coral Be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