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밤부터 화요일까지 미 북동부 지역에 찾아왔던 눈폭풍이 드디어 지나갔습니다. 다들 비슷하리라 보는데, 제가 사는 동네는 20인치 좀 넘게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60cm가 온거죠. 오늘 저녁에 일 때문에 잠시 통화했던, 펜실베니아 경계에 집이 있는 회사 동료는 30인치 넘게 눈이 왔다는군요.
제가 가진 snow blower는 battery powered mini blower여서 눈이 10인치 이상 쌓이면 눈을 날려버리지 못하고 모터가 멈춥니다. 그래서 일요일 밤부터 조금 전까지 몇 시간에 한 번씩 나가서 눈이 너무 많이 쌓이지 않게 계속 치워줘야 했지요. 그래도 결국 쉬지 않고 내리는 폭설에 쌓인 눈이 blower의 처리 한계를 넘어서는 바람에 snow blower를 세워놓고 눈 삽으로 sidewalk의 상당 부분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어젯밤에는 잠자리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치워야겠다는 생각에 나갔는데, 이웃들도 모두 다 나왔더군요. 옆집 남자들하고 눈을 치우면서 서로 투덜거림의 하모니를 만들 수 있었지요.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덜 힘든 건 아니었지만.
어제는 줄기차게 눈이 내려서 차라리 괜찮았는데 중간중간 눈이 멈췄던 오늘은 정말 정신없었습니다. 일하는 중간중간 나가서 눈을 치우는 건 당연했고 여기에 더해 눈썰매 타고 싶다는 아이들 데리고 동네 언덕으로(눈이 오면 정말 훌륭한 눈썰매장으로 변하는 곳이 있습니다) 무릎 위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다녀오기도 했으니까요. 썰매 위에 올라 슬금슬금 미끄러져 가는 아이들과 달리 저는 푹푹 빠져 가며 걸어야 해서 신발 안으로 눈이 다 들어와서 양말까지 전부 다 젖었습니다. 다행히 지난달에 눈이 왔을 때와 달리 아이들이 이글루 만들자고 하지 않아서 시간을 많이 벌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아이들이 그 이글루(진짜 작았음에도) 만드는 몇 시간 동안 그 옆에서 추위에 떨며 휴대폰으로 업무를 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안에 들어가서 사진 한 장씩 찍고 나서는 쳐다도 보지 않아 좀 허탈했던, 그런 이글루였죠.
저녁 먹기 전, driveway와 sidewalk, 그리고 현관 우편함 앞을 한번 더 정리하러 나갔다가 집 사진을 찍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눈 삽을 들고 집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주택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간혹 현실의 장소에 수십 년 전 어린 시절의 시간대가 겹쳐서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이 순간을 꼭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던 상황부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랜덤 박스에서 꺼낸 것 같은 그런 기억의 단편들이요. 그 순간에 대한 기억과 감정선을 어루만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따뜻했던 기억에 미소를 짓게 됩니다. 그리고, 뒤이어 내 아이들은 수십 년 뒤 지금의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하는 궁금함이 따라옵니다. 이민이라는 큰 변화를 겪은 이 시절이, 좌충우돌 고생했던 기억으로 남을지 아니면 즐겁고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남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한 가지 바래도 된다면, 지금 이 순간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특정 이벤트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이 아니라.. 따뜻한 시절이었다는, 모호하더라도 푸근한 느낌으로 추억하는 시절이기를 바랍니다.
ps
지금 기분에 어울리는 곡을 찾아 링크합니다. Samuel Lindon의 Tallis One 입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