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첫째에게 '실망했다'는 표현을 했다.
아이들의 자율에 맡겨 놓은 일이 있는데(정확히는 게임 시간 분배) 둘째가 제대로 신경을 못쓰는 틈을 타 첫째가 좀 더 시간을 즐겼고 둘째는 자기 시간을 누리지 못했다. 그 상황에 분노한 둘째가 첫째와 옥신 각신 하는 상황에 내가 끼어 들었다. 아이들 사이의 다툼에는 가급적 관여하지 않는데 이번엔 그럴수가 없었다.
첫째에게 몇가지 질문을 했고 사실상 야단을 쳤다. 일단, 첫째는 규칙을 위반하지 않았다. 피상적으로 보면 제대로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던 둘째의 잘못인거지 소위 '법대로 하면' 첫째는 잘못한게 없다. 첫째의 입장도 바로 그것. 자기는 잘못한게 없단다. 그리고 바로 그 입장에 대해 내가 대단히 실망했다고 했다. 둘째가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걸 첫째는 알고 있었고 자기가 그 시간을 더 누리면서 나중에 둘째에게 '나는 규칙대로 했으니 잘못이 없다' 라고 말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걸 나도, 첫째도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가장 못난 사람은 이웃의 손해를 의도적으로 방치한 뒤에, 정확하게는 거기서 자기는 이득을 취한 뒤에 '법대로 했고 잘못이 없다' 는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의 말대로 당당하고 싶었다면 동생이 규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걸 깨달았을때 그걸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려 할게 아니라 동생에게 다시 규칙을 설명해주고 모두 함께 즐겁게 노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고 강하게 이야기 했다. 그게 더불어 사는 이 사회가 유지되는 방법이라고. 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괴롭히는게 얼마나 싸가지 없는 행동인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이야기를 한참 했다.
둘째가 본인이 합의했던 규칙을 잘 몰랐던거니 첫째의 책임도 아니고, 첫째가 그만큼 더 이득을 누릴수 있는데 포기한다는게 쉽지 않다는 건 안다. 아이에게도 게임을 더 오래 할 수 있는데 스스로 게임패드를 내려놓고 동생에게 건네는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법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지 모든 경우를 대변할 수는, 완벽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사람은 자유 의지가 있고 도덕에 의해 집단을 유지할 수 있는 지성이 있기에 법대로 하는것 보다 법을 더 잘 알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더불어 함께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양보하는게 법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 아이를 앉혀 놓고 왜 아빠가 고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이들에게 기부를 하며 살고 있는지, 누구도 법으로 강요하지 않는 기부와 양보를, 그런 '법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 왜 아빠와 우리 가족을, 그리고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지 이야기 했다.
아이가 온전히 이해 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미래에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경우 아빠가 자신의 기만적인 행동에 실망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래서 그 멈칫거림이 행동을 바꿔 법을 헤아린다는 의미를 갖는.. 내가 지어준 아이의 이름대로 법을 이용하기만 하는게 아니라 법이 담고 있는 근본적인 목적을 헤아려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법과 규칙에 매몰되어 법에 관대하고 사람에게 매몰찬 그런 어른으로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Cover image: Image by Arek Socha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