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 쉬는 덕택에 몸이 무거운 아내를 모시고 병원을 함께 다녀올 수 있었다. 운전에 능숙한 아내와 달리, 나는 아직도 운전이 서툴러서, 만삭이 된 이후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무거운 몸에 힘들다 내색해주지 않는 아내가 참 고마웠다. 돌아오는 길에 늘 그렇듯, 아내가 좋아하는 중국식 만둣집도 가고, 달달한 음료수에 케이크도 한 조각 하면서 아내 기분을 돋워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지난주 수요일의 정기 진료일이었다. 산부인과 선생님 표정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낳을 때가 다 되었는데 양수가 좀 적네요. 네? 그럼 안 좋은 건가요? 책이나 읽을 줄 아는 나와 달리, 간호사였던 아내의 표정은 담담했다. 바로 입원해야겠네예, 그라모 내일 아침에 일찍... 의사 선생님이 웃었다. 아침에 입원하시면 준비가 너무 늦지, 오늘 저녁에 바로 입원해야 준비해서 애 낳죠. 여지껏 애 낳는다 하면, 드라마에서처럼, 아이고어머니애가나오려나봐요, 아이고에미야조금만기다려라김기사김기사!빨리차준비시키게,아니아니앰뷸란쓰! 하면서 삐용삐용 바로 병원가서 으악 으아악! 하면 애가 나올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아내는 병원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치렁치렁한 기계를 몸에 단 채로 누워서 오래오래 버텨야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내는 가능한 하루라도 늦게 병원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좌우지간 아내는 침착했다. 뭐 큰일은 아닐 겁니도, 양수 적은게 뭐 대단한 일도 아이고... 일단 간단히 준비한 뒤, 아내와 나는 한숨 깊게 잠들었다. 오후 6시쯤 부시시 일어나, 금식해야 할 아내는,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 챙겨주는 갈비탕에 밥 한그릇 말아 뚝딱하고, 나는 별로 입맛이 없어서 책만 챙겼다. 아내를 계속 돌봐야 하니 귀 막은 채 영화나 음악은 애시당초 틀렸고, 그동안 미뤄둔 책이나 실컷 읽자 싶어, 띄엄띄엄 읽고 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챙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최고의 선정이었다. 아내의 뱃속에서는, 10억 년 전의 지구처럼, 열 달 동안 격렬히 만들어진 생명이 마침내 밀려나올 때였으니까.
그렇게 금방 밀려나올 줄 알았다. 양수는, 곧 아기가 뱉어낸 소변이므로, 양수가 적다는 것은, 아기의 콩팥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견인데다, 산달이 다 되어 커진 아기가 지내기에도 좋지 않을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답답했지만, 아내는 성격처럼 무사태평 진통이 오지 않았다. 아내는 잠도 잘 잤고, 생리 현상에도 문제가 없었다. 부부 사이에 그쯤 치우는게 무슨 큰일일까. 서른두살의 아내는 마흔다섯살까지의 산모가 있는 대학병원의 병실에서는 젊은 축에 속했는데, 고령의 산모들이 제왕절개를 하고 밤새 앓는 중에, 유도분만제를 맞고도 크게 진통이 없었고, 선생님의 지시 아래 유도분만제를 거둔 저녁에는,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며 밥과 빵을 몰아먹고 잠도 잘 잤다. 정작 아무리 피곤해도 눈 한번 못 붙이는 쪽은 나였다. 아내는 아직 낯선 시어머니께 자신의 생리 현상을 맡기기 어려워했고, 처가 또한 포항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장모님께서는 밤에는 아내를 간호사에게 맡기고 잠시 집에 가 눈을 붙이라고 권하셨고, 결국 이틀을 버틴 뒤, 병원 코 앞의, 담배 냄새 진동하는 낡은 모텔방에서 네다섯 시간 정도 누웠지만, 잠은 절대로 오지 않았다. 아내가 머무는 진통실은, 말 그대로 진통이 오면서 아기가 곧 나오기를 기다리는 방이라, 보호자를 위한 침대는커녕,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그 옛날 수면 장애를 앓았을 때처럼, 미열에 시달리며 아내의 손을 잡아주면서 나조차도 꾸벅꾸벅 조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병원 소파에서든, 아내 곁에서든, 잠은 오지 않았다. 덕분에 핏발 선 눈으로 코스모스를 두 번이나 읽었다. 몸의 피로와는 별개로, 아내의 뱃속에서도 이루어졌을, 장중한 자연의 조화는 한 권의 책 분량임에도, 무한히 신비로웠다. 그렇데 이틀 반나절, 세 번의 하얀 밤이 지나갔다. 세상은, 실록의 한 장면처럼 역질이 돌고, 서로 갈려 다투느라 어지럽고 힘겨웠지만, 아내와 나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오로지 지루하면서도, 가슴 벅찬, 희한한 양면의 기다림만 있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심호흡을 해주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그 시간을 견뎠다.
그 동안 쭉쭉이라 불렀던 내 딸이 태어나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워낙 눈물이 흔한 나는, 다른 이들도 예상했듯이 딸이 태어날 때 분명히 펑펑 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기다림에 길었던 데 비해, 급작스럽게 낳아서일까? 아내는 이틀하고도 반나절 되던 오전부터 딱히 분만제 없이도 갑자기 진통이 몰아쳤다. 고통에 익숙치 않은 아내는, 오전 내내 아파하다 자다가 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열두시쯤 되어 2~3분 간격으로 몸을 뒤틀었다. 워낙 진통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느긋하던 선생님들이 아내의 밑을 살피자마자 어? 다 열렸네? 시트콤처럼 한 마디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지금까지의 모든 기다림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순식간에 분만실로 갔다가, 아내의 손을 잡고 두어 번 함께 힘주는 시늉을 하고, 그러더니 산부인과 선생님이 오셔서 나더러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고, 밖으로 쫓기듯 나가니, 이제 출산하고 나면 병실을 옮길테니 짐 정리해서 기다리시라고 하는, 그 10분 사이에, 갑자기 응애응애, 정말 정확하게 응, 애, 응, 애 발음하듯이 우는 아이 소리가 들렸다. 나도 처음엔 믿기지가 않아서 어디 다른 집 아기겠지 하다가, 아무래도 이상하여 염치불구하고 분만실에 귀를 대보니, 아이고 그 안의 아기 울음소리가 맞더라, 그 순간 문을 드르륵 열리고 선생님들이 웃으면서, 축하드려요, 산모님이랑 아기, 다 건강합니다~ 하고 지나쳤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애가 어데 아프진 않은지, 눈코입은 다 달려 있는지, 손가락 발가락 모자란데는 없는지, 하나하나 내 손으로 직접 살피라고 신신당부해두셨다. 그러나 무슨 옛날 플로피 디스크 꽂아두는 보관함 같은 유리통에 실려나온 아이는 온 몸을 꽁꽁 싸매서 사지 확인은커녕 얼굴이나 겨우 보였다. 다행히도 몇 분 기다리고 나니, 신생아실에 나를 들여보내주었다. 그때부터 내 호칭은, 보호자가 아니라 아버님이 되었다. 아버님, 아이 눈에 안 좋으니까 플래시는 터뜨리지 마시구요, 하면서 젊은 간호사 선생님은 노래하듯이 아이의 몸을 하나하나 확인시켜주었다. 머리 찌그러진데 없고, 손가락 발가락 열 개 전부 다 쥐고 펴는데 이상없구요, 허리도 똑바르고, 그리고 공주님이시구요, 하며 선생님은 빨간 귤쪽 같은, 아이의 다리 사이를 보여주었다. 아이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아이를 전체적으로 볼 수있엇는데, 아이는 갑자기 던져진 세상에 그저 신기한듯, 울지도 않고 손발을 바동거리며 축축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내 입에서는 웃음이 새듯이 흘렀다. 쭉쭉아, 아빠다, 내가 아빠다, 내가 너 아빠여. 2020년 2월 28일, 12시 54분의 일이었다.
솔직히 아내도 나도, 진통이 쉽게 오지 않아 자연분만은 반쯤 포기하고 있엇는데, 이렇게 아이와 산모가 모두 건강하니 바랄 것이 없었다. 아내는 2시간쯤 후에 생리 현상도 문제 없었고, 나더러 녹차 라떼를 한잔 사오라고 하여 뚝딱 하시더니, 밥도 잘 먹고, 걷기도 잘 걸었다. 나도 그때부터는 비로소 보조 침대에서 다리 뻗고 조금이라도 눈 붙일 수 있었다. 다만, 아내는 그때부터 3시간마다 한번씩 수유 전화를 받고 젖을 먹이거나, 조리원에서는 젖을 짜서 보관해야 했다. 그러니 나도 역시 푹 잠들기는 애시당초 틀린 일이었다. 한숨 돌리고 나니 그제서야 바깥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일단 병원 출입이 예전보다 훨씬 엄격해졌다는 사실이었다. 병원에서는 노골적으로 출입구를 봉쇄했고, 주말에는 출입증을 꼭 하나씩만 발급했으며, 드나드는 모든 이들에게 예외없이 종교를 물어보았다. 사람들의 원성은 대단했지만, 그래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웃음꽃이 떠나지 않고, 기꺼이 출입증을 넘겨주시며, 병원 바깥에서 기다리셨다. 아버지는 이 이상 행복할 수가 없다셨다.
조리원의 생활은 편하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아보였다.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면회객들은 방문이 금지되었고, 남편조차도 상주하다 출퇴근이 시작되면 더이상 드나들 수 없었다. 산모가 직접 하루 세번, 한번에 두 시간 정도 아이를 돌보며 젖을 주었고, 그 외에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세시간에 한번씩 젖을 짜 신생아실에 갖다주어야 했으며, 밥과 간식이 수시로 들어오고, 청소며 빨래, 소독도 오전 중에 꼭 해야 했다. 그나마 요가며 스튜디오 촬영, 모빌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모두 중단되어 아내는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눈 붙일 수 있었다. 나는 또다시 잠이 오지 않고, 다만 진이 빠져 계획과 달리 훈련할 수 없었으므로, 마치 네루가 된 심정으로, 우주여행을 마치고 딸과 함께 세계여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세계사편력을 읽으며 또다시 며칠의 불면을 버텼다.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옮기는 동안, 잠시 시간을 내어 아버지와 술을 마셨을 때,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소주 4병에 그만 크게 취해버렸는데, 어머니께 전해들은 아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어머님이 그러셨습니도, 여보야가 딸 꼭 잘 키울거라꼬, 울다 웃다 했다 카대요, 뭘 그래 울었습니까? 하기에 조금 민망하였다. 반으로 가른 첫 출산휴가의 닷새째가 끝나는 날, 나는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속세의 난삽함과 어지러움이 내 몸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아비가 되었다. 2020년 2월 28일 이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