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삶의 촘촘한 새에서

by Aner병문

처자식이 없을 때에도 당연히 한가하진 않았지만, 처자식이 다시 오니 역시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일단 항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은 아이가 있다보니 모든 집중은 항상 아이에게 가 있다. 떠나신 어머님의 뒷일을 처리하랴, 아버님과 딸을 번갈아 돌보랴, 아내가 혼자 처가에서 정말 고생이 많았을 터이다. 나는 다섯시에 일어나서 일곱시까지 훈련했고, 십 분 내로 아침을 대략 먹고 이십 분 내로 화장실 쓰고 씻고 면도하고 비로소 아내를 깨우며, 그 때 아이가 운좋게도 짜증을 내지 않은 상태로 깨어 있다면 단란하게 인사하고,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달래고 돌보느라 출근이 좀 늦어지기도 한다. 요즘 출근길은 희한하게 늦어지고 늘어져서, 예전에는 5분 정도 일찍 나와도 충분했는데, 요즘에는 20분 일찍 출발해도 10여분 전에 겨우 회사에 도착하곤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정신없이 회사 일을 처리하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교대하여 아이를 돌보는 동안 아내는 저녁을 차리고, 저녁 먹고 뒷정리하면 벌써 아이 재울 때다. 이러니 살이 찌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부탁받은 원고가 있어 속을 좀 썩였더니, 벌써 다시 이틀째 새벽 훈련을 못하고, 실은 오늘도 새벽 3시에 일어나 투닥투닥 쓰고 있다. 최근에 함께 승단심사본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작년 가을부터 제대로 훈련하지 못한 부족함과 둔함이 여실히 드러나 부끄러워서 누구에게 자랑도 안했다. 여기에 올리지도 않을 작정이다.



사는게 번잡스럽고 힘든건 나뿐만이 물론 아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너는 결혼을 위해 우울을 버렸다고 해서 나를 오랫토록 곱씹게 만들었는데, 또 얼마 전에는 무심코 사는게 취미없다 라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누군가 말하면 허세처럼도 들리고, 또 뉜가 말하면 허무하고 건조한 입버릇처럼도 들릴텐데, 이상하게 너가 그런 말을 하면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다. 너는 결혼하고 살림을 새로 차릴 때부터 윗층 노부부인 집주인과의 알력다툼에 대해 종종 말해주곤 했는데, 훤칠한 너의 신랑 정수리에 닿을세라 반쪽이 뚝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린 형광등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것도 세입자가 고쳐야 되냐며 투덜거렸다. 삶은 영화가 아니라서 모두가 주목하는 대단한 위기도, 성공도, 기적도 좀처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생각지도 못하고 원하지도 않았던 자질구레한 살림살이조차도 때로는 짜증과 절망을 촉발시키는 방아쇠가 된다. 나 역시도 여유가 있으면 군소리 없이 퇴근 후 모든 집안일을 다 하지만, 여유가 없고 바쁘고 힘든 날에는, 물론 아내도 힘들다는걸 알면서도, 그래도 좀 비어 있는 낮 시간에 이런 건 좀 미리 해주지, 또 한숨 주무시고 유튜브 보셨구먼, 하는 생각은 속으로 지울 수 없을때도 많다. 대장부가 되기엔 아직도 먼 길이다.



아내는 일상으로 돌아온 뒤 오히려 더 어머님 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나란히 누운 밤에 아내는, 내가 회사에 있을 동안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다시 받아오는 그 시간에 항상 생전 어머님과 통화하고 외손녀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틈이 비어버리니 대번에 상실감이 오더라며 우울해했다. 처가에서 정신없이 바쁠때는 모르다가, 다시 집에서 일상 축을 맞추니 비로소 더 외롭고 힘든 모양이었다. 내 작은 피로를 말할 때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나 역시도 할 말이 없어 어둠 속에서 고개만 끄덕거리고 말았다. 아내는 보았을까. 아내는 얼마 전 꿈 속에서 어머님을 보았다고 했다. 갈대밭에서 만난 어머님의 얼굴을 잡고, 엄마, 거는 안 아프나? 건강하나? 행복하나? 천국 갔나? 맞나? 하다가 깨었다고 했다. 아내는 새벽에 많이 울었다. 아내는 나에게 엄마 천국 갔을끼다, 그치? 했고 나는 이 사람아, 당연 안 헌가, 안 헌가, 하면서 아내의 동그란 어깨만 쓰다듬었다. 어제 이맘때쯤, 새벽 서너 시의 일이다. 그래서 어제도 새벽 훈련은 못했고, 아이는 내 출근길 직전에 색연필을 입에 넣었다. 현관문을 막 여는데 아내가 소은아 안돼! 뱉으라! 하고 우당탕 하기에 파랗게 꽃이 핀 아이 입을 보고는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어서, 어서 뱉으라고 등만 서둘러 쳐냈다. 사는 것이 이렇다. 예상할 수도 없고, 안주할 수도 없다. 해야할 일은 항상 많아 번잡스럽다. 아직 해뜨지 않은 새벽 바깥에서 물 소리가 난다. 황석영 선생의 글은 어찌저찌 절반 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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