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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Aug 06.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문경(聞慶), 그리고 소은골절애사(塐恩骨切哀事)

0. 문경(聞慶) -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 고을


모처럼 애 고모가 하도 성화여서 가족들 다 같이 휴가를 한번 맞춰 떠나기로 했다. 아내가 모처럼 길게 휴가를 냈는데, 하필 중간쯤에 도저히 빠질 수 없는 회사 동기 모임이 끼어 있다고 했다. 어딘지 물어보니 문경 거의 근처 상주라고 했다. 얘기를 들으신 아버지께서 입맛을 다시셨다. 문경, 거 조오치, 맨발 축제도 성대하게 하고, 문경새재 볼 것 많고, 그럼 거그로 갈까? 그럴까예, 아부지? 문경 함 가도 되겠어예? 때마침 어머니가 아시는 한정식 식당 겸 펜션도 있다고 해서 서둘러 그 곳을 숙소로 정하고 4박 5일 일정을 잡았다. 농사짓던 시절, 문경은 출장으로만 한두번 다녀봐서, 임진왜란 때 명장으로 이름날린 신립 장군이 기마전을 위해(혹은 전설의 고향에 따르면 버림받은 옛 연인이 복수하려고^^;;) 이 천혜의 요새를 버리고 탄금대에 진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고, 버섯과 한우고기가 맛있었던 기억은 선명하게 났다. 뭐가 되었든 최근 복잡했던 일상 좀 다 잊고 그냥 처자식과 함께 녹색 풍경이나 실컷 봤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1. 정말 경사스러운거 맞아? - 소은이 징크스, 벌써 두 해째!



안양 관우- 소은이가 작년 휴가 전날 어린이집에서 장난치다 제풀에 뒤로 자빠지며 책상 모서리에 아래 턱을 찧어 마취제도 없이 병원에서 턱을 그냥 몇 바늘 꿰맨 얘기는 이미 한 적이 있다.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가도 코가 깨진다 했지만,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기 오히려 재수가 좋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팔을 다쳤다. 휴가 가기 바로 전 주말, 내가 ㄹ사범님과 마르틴 사현님과의 통역하느라 그 날따라 귀가 빨리 뚫리지 않아 진땀 뻘뻘 흘리던 떄, 아이는 그토록 좋아하는 아동용 짚라인에서 미끄러지며 땅바닥에 손을 잘못 짚었다. 당시에 좀 울긴 했지만, 간호사였던 아내 눈에 보기에 붓지도 않았고, 손목도 잘 움직여서 그냥 좀 삐었을 뿐, 별일 없겠거니 주말을 보냈다. 그러나 월요일부터 어린이집에서 만지면 자꾸 아프다고 하고, 하지만 또 움직이는 건 잘 움직이고 하여 어린이집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도 아리송송하였으나 어머니가 혹시나 싶어 병원에 가보니 아뿔싸, 작년에 마취제 잘못 놓았다가 애 못 꺠어나면 그게 더 큰일 아니겠냐며, 할아버지, 할머니, 아비, 어린이집 선생님 한명씩 팔다리 하나씩 잡으라 호령했었던 선생님은, '아이고, 이 아이는 올해도 또 왔네~' 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애 아버지가 얘길 잘 들어야 된다구, 응? 아기 뼈는 어른들 뼈처럼 단단하질 않어요, 그래서 부러지긴보단 잘 휘지, 애 엄마가 간호사셨다구? 그럼 어느 정도 잘 알겠구만, 골막을 다쳐야 붓기가 심한거예요, 골막까지 다친건 아니고, 뼈가 좀 벌어진건데, 소아형 골절은 이런 것도 부러진 걸로 치지, 하면서 보여주신 소은이의 양팔은, 과연, 좀 달랐다. 다치지 아니한 팔의 양쪽 뼈보다 다친 팔의 양쪽 뼈가 훨씬 더 벌어져 있었다. 아내는 한동안 자책을 좀 많이 했었다. 에고, 엄마가 잘 몰라가, 미안하데이, 엄마는 안 부었으니까네 똑(딱) 삔 줄만 안 기라~ 야, 이 사람아, 그렇게 치자믄야 나도 똑같제, 나도 여보한테만 애 맡기고 도장 일 보러 나갔으니 나라고 뭐 잘했는가. 어쨌든 그만하길 다행이긴 했다. 그러나 저러나 전소은, 아비도 젊었을때 택견하다 낙법이 어설퍼서 뒤통수부터 떨어져서 뇌진탕 오고, 팔 부터 떨어져서 팔뚝 삐고 한건 똑같았는데..어째 너까지 그러느냐..ㅠㅠ



2. 그래도 휴가 가는 길은 즐겁다! - 길의 도시, 문경!


문경은 일제 시대 때 북쪽 지방 못지 않게 광맥이 발달한 곳이었고, 중공업이 한창 발달하던 때에는 길 가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었더랬다. 그러나 광산이 점차 쇠락해가면서, 문경은 새롭게 나아갈 길을 찾아야 했고, 결국 옛 길을 중심으로 하여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당시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을 가기 위해서는, 죽령, 추풍령, 조령-즉 문경새재를 넘어가야 했는데, 죽령은 죽을 것 같고, 추풍령은 가을 바람에 쓸리듯 떨어질지 모르니,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 문경을 통해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오며 가며 교통이 활발하던 곳이었으니 문화도 발달했을 터이고, 맛있는 음식도 풍성했을 터이다. 솔직히 어머니께서 큰 맘 먹고 사주신 오미자 와인이나, 사과 증류주 맛은 잘 모르겠지만, 경상도 분들이 주로 장아찌로 절여 드신다는 까죽나무(참죽나무) 잎이나 여러 나물들 및 그 유명한 문경 한우 고기, 버섯 전골 등은 정말 맛있었다. 어머니가 잘 아시는 펜션 겸 한정식집에서 4박 5일간 묵었는데, 장맛도 좋았고, 나물, 밑반찬도 다 좋았다. (다만 3일째부터는 솔직히 좀 물리기 시작했는데, 반찬을 전혀 바꿔주지 않으셔서 온 가족이 조금 상심..결국 전소은이 총대 메고 진짜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 나절부터 '저어, 혹시 오늘은 고기가 있나요?' 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지가 물어봄. 야 임마, 누가 시킨 줄 알겠다..^^;; 사장님이 박장대소하며 그나마 들기름에 달걀 2알 구워주심, 2알!! 사람은 여섯인데!)



3. 그러니까 정말 길의 도시라니까? - 각종 운동 선수들의 축제


아내가 국기원 세계태권도대회를 때마침 한다며 보러 가자 하기에 내가 속으론 좋으면서도, 아따, 참말로, 거그 국기원 태권도 하는걸 ITF하는 내가 머던다고 본다 그려, 하자마자 아내는 눈을 흘기며, 하이고, 사범님 들으시모 참 좋아하시겠니더, 누가 모 거기 가서 태극 1장, 2장 그란거 배와오랬능교, 그런 큰 대회는 행정이 우찌되나 함 보고, 대회 어찌 돌아가나 눈에 담아와야, 우리도 대회할때 더 좋게 할꺼 아입니까, 조만간 안산에서 대회한다 안했어예? 신혼 시절부터 도복 하나 사줬지만 지금까지 태권도는 딱 이틀해보고, 천지, 단군, 도산, 틀의 이름 정도만 겨우 아는 아내는, 태권도가 종류가 다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ITF라는 태권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지만, 대회 오면 항상 현지 의료인들 대신해서 다친 선수들도 봐주고, 시상식 일도 잘 돌봐준다. 그때마다 사범님은, 역시 장가는 잘 갔어! 하며 칭찬해주시기 일쑤였는데, 이번에도 사범님 그 말씀 전해들으시더니, 역시 제수씨가 나랏일 하는 사람이라 달라, 시야가 넓어, 하며 껄껄 웃으시었다. 바빠서 태권도대회를 가진 못했지만, 근처 호텔에서 묵는 외국인 선수들은 꽤 본듯했다. 



아버지는 자주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셨고, 확실히 오르면 오를 수록 산이 시원해서, 피부 떄문에 더위에 약한 아내는 중간에서 쉬고, 여동생과 나와 소은이는 처음에는 1관문, 다음에는 2관문, 마지막엔 3관문까지 3일에 걸쳐 올랐다. 올라갈수록 각도가 높고 험한 길이었는데, 옛 선비들은 이보다 험하고 정리 안된 길을, 괴나리봇짐에 짚신 신고 넘었을 생각을 하니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은이는 팔 다친 일을 핑계삼아, 항상 할아버지께 업어달라 안아달라 떼쓰기 일쑤였는데, 이 땡볕에 무슨 수로 너를 업고 안냐;;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산 아래에서 무료로 빌리는 유모차에 소은이를 싣고, 떼 안 쓰도록 양산에다가 휴대전화까지 쥐어주고, 매일매일 올랐다. 보는 사람마다, 하따 마, 호강한데이, 아빠가 고생하는고마! 다 그러시기에 나 역시 소은아, 어찔려? 영남 고개에 너 이래 애비 고생씨기는거 다 소문나겄다. 진짜 땀범벅이 되어 하루 평균 여섯 시간 정도 소은이를 밀고 당기느라 엄청 고생했다. 허벅지가 당기지 않을수가 없었는데, 아버지는 발차기 자세 한번 취해보라 하시더니, 실망하신듯, 무슨 놈의 발이 올라가지도 않고..아버지, 매일 3만 보 넘게, 가족들 물통 지고 소은이 유모차 밀면서 올라왔다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편 아내와 아침 산책을 나갈때마다 정말 들사슴처럼 날씬한 몸매에 군살 하나 없이 복근과 굵은 허벅지를 뿜어낼듯 드러내며 달리는 젊은 소년소녀들이 있길래 물어보니 전지 훈련 온 초등, 중학, 고등, 대학생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이란다. 아침마다 진짜 엄청 눈호강했다. 어리고 젊은 친구들이 잘 다져진 흙길을 팡팡팡 뛰고 달리는데 정말 그 자체로 젊음이 흠뻑 느껴졌다. 진짜 전문적인 운동으로 단련되어 몸매야 말할 것도 없지만, 어찌나 다들 연예인들 뺨치게 잘생기고 이쁜지.. 게다가 몇몇 쾌활해보이는 친구들은 숫제 웃통을 훌렁 벗고 땀투성이가 된 상체를 드러내며 달렸는데, 멋지게 갈라진 복근이 산맥처럼 꿈틀거렸다. 아내는 오메야, 저 몸 좀 보소, 어쩔니껴, 하며 혼자 좋아하고 ㅋㅋㅋㅋㅋㅋ 미안하군요 내무부 장관님..ㅋㅋㅋ 나는 육체미 운동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ㅠㅠ ㅋㅋ 그치만 나도 젊었을때 권투하면서 감량할땐 몸 좋았다구 ㅋㅋㅋㅋㅋ



4. 휴가 이후 소은골절애사 뒷이야기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소은이는 반깁스를 한 왼팔이 덥고 가려워서 자주 빼고 싶어했다. 밤마다 칭얼칭얼하더니 급기야 통통한 팔을 쓱 움츠려서 깁스째로 팔을 빼는 법을 저 스스로 터득해버렸다. 주말간 나는 밤늦게 토근하여 집에 오면 주중엔 업무에, 주말엔 나 없이 애보느라 지친 아내는 안쓰럽게 먼저 잠들어 있고, 소은이가 잠든 제 어미 곁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제 아비 들어오는 것을 보고, 훤히 드러난 왼팔을 보여주며, 아빠! 이거봐요, 소은이 이제 붕대 풀고 팔도 안 아파요! 나 수영장 갈수있어요? 저 혼자 풀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라서, 나는 간호사 출신인 아내가 이제 괜찮다고, 수영장이나 가자며 애 달래주려고 풀어준 줄 알았다. 주말 내내 나는 제대로 훈련하지 못햇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술 몇 모금으로 여유를 잠시 달래다, 너가 선물해준 김성동 선생의 유작을 좀 읽다 잠들곤 했는데, 아침에 아내가 천둥치는 소리를 내길래 깨었다. 우짜꼬, 전소은! 니 밤새 붕대 빼뿟나! 요 장난꾸러기를 우짜꼬! 화닥닥 눈떠보니 소은이는 혀를 내밀며 머쓱한 표정으로 빈 석고 깁스를 칼처럼 빗껴차고 헤헤 웃고 있었다. 그 때서야 이 놈이 밤새 몰래 손을 움츠려 깁스를 빼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았다. 미운 다섯살이라더니 갈수록 머리가 굵고 고집이 세어, 요즘엔 뭐든 제 이유를 따박따박 대며 제 뜻대로 하려든다. 어머니 아버지는 점점 노쇠하여 세미해지시고, 애 낳아놓은 부모는 일한답시고 항시 바쁘니, 가끔 일상이 바쁠때는, 고집부리는 아이가 답답하여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내 딸 전소은, 늘 똘똘하고 이쁜 내 자식이다. 갈수록 험해지는 세상에 어찌 옳고 곧게 키울까 늘 걱정이다. 휴가는 가족끼리 모처럼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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