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면식수햏(9) ㅡ 구디단 ㅈ 한우, 안양 ㄱ
1. 구디단 ㅈ 한우
때는 바야흐로, 다리를 다친지 얼마 되지 않은, 작년 초겨울 무렵이었다. 아직은 그렇게까지 춥지 않아서, 이렇게 따뜻한 겨울이 있다니, 생각될 정도였다. 안 그래도 오전에는 도장 훈련, 다녀와서는 바로 책 좀 읽고 삼십분 정도나 쉬다가 또 소은이 데리러가고 해야하기에 오히려 더 바쁜 쉬는 날에 병원까지 다녀와야 하니 오히려 일이 더 늘었다. 도장 훈련 끝나고 간단히 뭐 좀 먹고 빨리 병원 가야될텐데, 해서 찾은 곳이, 사실 회사 출근길보다 늘 보는 한우집이었다. 스스로 간판에도 냉면 맛집, 이라고 적어놓으시기도 했고, 어쨌든 고깃집이면 사시사철 고깃국물은 늘 있을테니, 냉면이야 하겠지 싶어 한 그릇 뚝딱 얼른 먹으려고 큰 기대없이 갔다.
결론 : 고기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냉면은 그냥 그랬어요.
가격은 솔직히 꽤 됩니다. 제 기억에 만이천원 정도였던 것 같아요. 이 맛에, 이 양이라면 솔직히 만원이상 넘어가는건 좀 심한데, 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바로 정육해서 고기를 파는 고깃집이기도 하고, 사실 도장 훈련 끝나고 가면 점심 시간이 끝난 무렵인데도 불구하고, 꽤 많이 찾아오신 손님들이 왕갈비탕이나 육회비빔밥을 드시고 계셔서, 고기 하나는 좋은 집인가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육수는 그냥저냥 무난하고 시큼달큼한 시판 육수에, 면도 당연히 시판용이었지요. 시간이 꽤 흘렀는데, 정확히 그 맛이 생각나지 않고, 다만 다른집 일반 냉면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던 냉면이라는 느낌만 남았습니다. 참 맛이란게 이럴때 보면 신기해요. 전문 훈련을 받지 않아도 맛에 대한 인상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이 집의 냉면은 개별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비슷한 맛의 천편일률적 냉면들은 수도 없이 생각납니다. 반면, 맛집이라는 곳들은, 아, 그 곳 맛은 이러저러했지, 하고 특별하게 기억되는 법이지요.
2. 안양 ㄱ,
소은이가 워낙에 국수대장이라, 아비어미와 같이 있으면, 하루 한끼 정도는 같이 면을 먹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피부를 자극해서는 안되니까, 가능하면 밀가루 면보다는 냉면을 먹여주려고 한다. 소은이는 잔치국수도, 짜파게티도, 짜장면도 다 좋아하지만, 꼭 하나 고르라면 역시 시원한 냉면을 좋아한다. 아직 어려서 짜파게티, 이외에는 다 국수(정확한 발음은 꾸욱수?! 반드시 단어 사이를 길게 늘려주고, 끝은 되묻듯이 강세를 주어 발음해야 한다.그만큼 좋다는 거다 ㅋㅋ ) 로 통일하긴 하지만, 그래도 냉면에 대한 사랑은 더욱 각별하다. 왜냐하면 다른건 몰라도 마트에서도 꼭 냉면 앞을 서성거리면서 헤헤 미소를 달고는 '엄마, 아빠, 집에서도 꾹수 해주면 안돼요?' 라며 육수 봉지를 무슨 인형 안듯 소중히 끌어안고 애교를 부리기 때문이다. 소은이는 이미 다섯 살 전부터, 진짜로 어른 그릇으로 냉면 하나 뚝딱 했다. 부른 배를 끌어안고 씩씩거리고 있으면, 지나가던 직원분들께서 '아이고, 공주야, 니 이걸 혼자 다 묵나, 배 안 아프나?' 걱정하고 신기해하실 정도로, 소은이는 냉면을 좋아한다. 그런 입맛은 꼭 아비를 닮았다.
키즈까페에서 좀 놀다가, 소은이 장난감 하나 사주고, 바로 밥 먹이려고, 안양역 엔터식스 안의 식당 여러 곳이 모여 있는 층으로 갔다. 우리 부부는 사실 아직까지도 불이 무서워서, 웬만해서는 소은이 데리고 불쓰는 집에 가지 않는다. 그런고로 소은이가 좀 더 크면, 내가 사실 제일 먼저 가고픈 곳은 양꼬치집이다. 소은이가 머리가 좀 굵은 뒤로, 진짜 나는 아직까지 양꼬치 한번도 못 먹었다. 가끔은 가족 다같이 장어집도 가고, 고깃집도 가고 하는데, 유독 우리 가족끼리만 양꼬치집은 아직 무섭다. 불 위에서 돌고 도는 꼬치에 꼭 소은이가 다칠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게다가 아기가 불 앞에 있으면, 아무리 나라도 맘 편하게 술을 마시거나 하기도 어렵다. 맨정신으로 빠짝 내 자식 잘 보고 있어야지... 그래서 돌고 돌다보니 결국엔 냉면이 있는 한식집으로 가게 되었다. 여러 손님들이 빨리 오고 가는 집답게, 아기 손님이 오니, 직원분이 반겨주시며, 벌써 아기용 컵과 수저 젓가락, 접시를 플라스틱제로 내어주셔서 좋았다. 아무래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눈치를 볼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미리 챙겨주시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물론 우리 전소은은 눈치 안본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전소은, 벌써 옆 자리에,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언니 오빠들이 냉면 먹고 있는데, '엄마, 아빠, 저기 이쁜 언니들이 있어요!' 라며 '언니들 안녕~' 한다. 그 앞자리에 앉은 오빠들은, '헐, 누가 이쁜 언니임, 저 애기 너무 착하다~' 이러고 어린 여중생들은 '왜, 애가 눈 좋은데, 내 얘기 하는거지?' '야, 나거든~ 애기야, 나지? 내가 이쁜 언니지?' 이러고.. 아이고 좋을때다.
결론 : 역시 마찬가지로 맛은 그냥 그런 집입니다.
최근 느끼는 생각인데, 엔터식스도 그렇고, 독산동 롯데 빅마켓도 그렇고, 그 외에 규모 좀 있다는 대형매장의 푸드코트 냉면집을 가보면, 면과 육수 맛이 정말 똑같습니다. 아마 제 생각엔, 거대 대형매장 기준으로 납품받는 면과 육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면의 질감, 굵기, 육수의 염도와 산미까지 이렇게 다 똑같을 수는 없지요. 그래도 이런 집은 마치 패스트푸드점처럼, 조경규 선생이 설명해주셨듯, '낯선 곳에 왔을때 마치 고향집을 찾아온듯' 익숙한 맛을 주긴 합니다. 그래도 ㅈ한우집의 냉면보다는 엔터식스나 롯데 빅마켓의 냉면집이 조금 더 나은 맛입니다. 다만 식초를 따로 치지 않아도, 지금 문장만 쳐도 입에 침이 고이는, 혀를 찌르는듯한 산미는 때때로 거슬릴 때가 있습니다.
함께 했던 아내는 유독 표정이 편안했는데요, 사실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맛있는 평양냉면을 한번 먹여주고 싶어서, 수원에도 갔고, 독산동에도 갔지요. 독산동 ㅈ면옥을 아내와도 같이 갔을때, 사실 어느 정도 아내의 반응이 예상되었기에 나는 아내 몫으로 비빔냉면을 주문했었죠. 면수까지는 좋았던 아내, 비빔냉면도 그냥저냥 먹는듯해보였어요. 그러나 내 몫의 평양냉면을 먹어보더니, 그야말로 브로콜리 표정… ㅋ 브로콜리 표정이란, 소은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때는 브로콜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유식에 브로콜리를 잘게 뜯어 넣어줘도 떨떠름한 얼굴로 뱉어내던, 바로 그때의 표정이죠. 물론 지금의 소은이는, 삶은 브로콜리조차.과자처럼 으적거리는 아이가 되었습니다만… 여튼.아내 왈, 남편 덕에 식문화의 범위가 넓어지는건 좋은데, 평양냉면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그냥 새콤달콤한 냉면이 좋다고 해서 약간 좌절ㅜㅜ 아니, 물론 맛은 취향따라 가는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미료와 설탕으로 강하게 맛을 낸 음식을 읍읍… 내가 처자식을 위해서 얼마나 엄선된 식당만 가는데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