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삶은 마치, 지층이나, 시루떡이나, 케이크 같은건가보다.
그러므로 기형도 시인은 죽기 전 말하였다. 힘없는 책갈피는 언젠가 이 종이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독산동에 살던 여자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와는 두번의 직장을 함께 한 외간 여자였다.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지만, 나보다 어렸고, 차가운 듯했으나 속정이 깊어서, 몇 번 연락하지 않았어도, 안식구가 소은이를 낳았을때, 아이스크림 한 상자를 보내고, 생일때면 툭툭 몇 마디씩 축하의 말을 던지곤 했었다. 장정일 시인의 충남 당진 여자처럼, 그러한 관계도 아니었고, 그러한 맛도 없었으나, 아주 차가울 줄 알았던 아가씨가 때때로 보여주는 정은 따뜻해서, 아, 사람은 역시 이렇구나, 나는 괜시리 감사하곤 했었다. 그러므로 회사 동료이기도 했던 여인이 갑자기 고인이 되었을때, 나는 아연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새삼 가신 이의 자리가 하얗게 보여, 나와 아내는, 결혼식에도 와줬던 귀한 손님이기에 함께 옷을 차려 입고 조심히 다녀왔다. 투박한 장례식장의 환경에서, 혼자 더욱 젊은 나이에 화사한 영정 사진을 보았을때, 아마도 영정 사진을 준비조차 생각 못할 나이이기에 더욱 그랬겠으나, 그 화사한 색이 더욱 이질적이어서, 나는 비로소 눈물이 울컥 차올랐고, 안면이 있는 부군의 얼굴을 보았을때 더욱 그러했다. 세상에 남겨진 부군은 침착했고, 여유가 있었고, 많이 웃으며 우리를 대해서, 나와 아내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찍 자리를 떴고, 그 날 나는 중래향에서 정말 폭음했다. 오죽하면 사장님이, 치엔 시엔셩, 뭔 일 있는가, 그래 마시면 죽어, 할 정도로 나는 많이 마셨다. 솔직히, 그리 친한 관계도 아닌, 회사 동료였는데도, 스쳐지나간 무게가 오래 남아, 나는 새삼 삶과 죽음을 오래 생각했다.
살아남은 나는, 승진한 뒤로 일이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하루의 일이 하루로 저물어 끝나지 않고, 내일이 올때까지 고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퇴근하여 늘 지쳤고, 짜증이 늘었고, 술을 마셨고, 도장에서 땀을 흘렸다. 아내가 늘 관대하게 나를 대해주어 다행이었다. 나는 점점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때마침, 사범님 또한 외부 일정으로 한 주간 도장을 비우시며, 조심스레 내게 전화하시어 한 주간 평일 저녁을 부탁하셨을때, 나는 정말 쫓기듯이 살았다. 회사가 끝나면 바로 도장으로 가야 했기에, 행여나 퇴근이 늦으면 나는 늘, 입문자들에게 미안했다. 밤늦게 돌아오면 이미 자정이 가까워 아내의 얼굴은 때꾼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오랫동안 마음이 막혀서 책을 읽지 못했다. 나는 한동안 오로지 술을 마셨고, 그리고 태권도를 했다. 그러다 새삼 느끼는 바가 있어, 기도를 했고, 다음날 일을 하지 않는 날에만 술을 마시기로 작정하였으매, 기도하며 겨우 회사를 버티고, 끝나면 바로 도장으로 가서, 사제 사매들을 돌보았다. 오늘 심판 세미나때도 명확힌 드러난 나의 한계가 부끄러울만큼, 흰 띠 사제사매들에게 나는 훌륭한 지도자는커녕, 선배조차도 되지 못했다. 지금 유튜브에 출연하신 사범님을 보고 오는 흰 띠 입문자들에게 정말 죄송하게도, 그들은 노란 띠 정도만 되어도 내 실력을 대략 눈치채고, 더이상 나에게 무언가를 묻지 않을 터이다. 나는 늘 열심히 했고, 늘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력이 지지부진했다. 물론 나의 최선은, 적어도 술을 마시고, 책을 읽는 여유를 둔 나머지의 모든 시간을 바친 결과이다. 책과 태권도와 술은, 늘 내게 한 가지였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어 아내는, 내 몸을 쉬게 할 시간이 없다며 늘 걱정했다.
그러므로 삶은, 우리가 어렸을때 과학 시간에 만든, 지층의 모형처럼, 켜켜이 쌓인 시루떡이나, 아내가 좋아하는 티라미슈처럼 케이크인 모양이다. 삶의 사이사이에 늘 좌절과 슬픔이 오고, 그 맛을 봐야 또 다음 달콤한 무엇이 오는 모양이다. 삶의 두께가 늘 달라져서, 나는 겪어내느라 정신이 없다. 사범님은 오늘 내게, 오로지 배운 것만을 반복하는게 유단자가 아니라, 그 원리를 가지고 응용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떤 것이 삶의 태도인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옳다고 배운 것' 을 가지고 삶을 겪었다. 그것이 통하지 않을때 나는 좌절하고, 어려워진다. 나는 늘 어리석고, 알 수 없어서, 어지럽다. 요즘에 그렇게 살아서, 무엇을 읽을수도 쓸수도 없고, 몸만 닳도록 못살게 굴었었다. 태권도와 삶의 방식이 참으로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