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앨런, 무엇을 생각하며 살 것인가
제임스 앨런, 장순동 역, 무엇을 생각하며 살 것인가, 판미동, 2014.
우리 도장 앞에는 커피도 맛있지만, 와플과 샌드위치를 끝내주게 잘 만드시는데다, 거기에 늘 함박웃음 가득 지어 올려주시는, 활달한 미소가 일품인 사장님의 까페가 있는데, 도장 가는 길에 시간이 애매하면 종종 거기 들러 시간을 때우곤 한다. 처음에는 사장님과도 서먹하고 손님도 별로 없어 책 읽기에 좋더니만, 워낙에 젊은 사장님이 발랄해서 그런지 금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서 북적이게 되었다. 잠시 책 좀 읽을까 하여 찾아갔다가, 앗차, 웬일로 책을 다 읽어놓고 새 책을 채워놓질 않았다. 항상 가방에 도복, 갈아입을 속옷과 수건, 책, 술병을 잊지 않던 내 청춘 시절이 무색하게 되어 하릴없이 랄프 미치오 주연의 옛 영화 가라테 키드(우리 나라에는 베스트 키드로 번역되었다.) 나 보고 있자니, 갑자기 사장님이 '제가 읽는 책이라도 일단 드릴까요?' 라며 주신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제목 한 번 무시무시하네...(...)
아직 젊고, 고민이 많은 사장님은 인생의 정답이 많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기사 나도 한 3년 멋모르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시원하게 말아먹은 적이 있으니 그 마음은 잘 안다. 그나마 나처럼 기분파에 술 좋아하고 보기보다 즉흥적인데다 소심하기까지 한 인간은 남의 돈 받아먹고 사는 것이 제일 속편하다는 사실을 결혼 전에 깨닫게 해주어 참 다행인 일이기도 하다. 좌우지간, 풍진 세상에 살면서 누군들 마음을 깊게 눌러줄 정답 하나 품고 살고 싶지 않겠는가. 내가 강신주 선생의 두꺼운 책 신구판을 가리지 않고 밑줄을 쫙쫙 그어놓듯, 사장님 역시 '인생 철학의 아버지' 라 불린다는 제임스 앨런, 저자의 온갖 좋은 말들에 연필로 밑줄을 그어놓았다.
세상에 누군들 좋은 말을 몰라서 못할까, 누군들 옳은 길이 뭔지 몰라서 살지 않을까. 단지 상처받기 쉬운, 여리고 좁은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다보니, 그 가슴에 다 담지 못할 작은 욕심조차 채우지 못하다 가끔은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걸음을 디뎌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온갖 석학들과 종교적 지도자들은 삶의 방향을 여러 가지로 제시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믿으며 살라 하셨고, 예 라 할 것에는 예 라고, 아니오 라고 하는 것에는 아니오 라고 말하고 살라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집착이 나를 괴롭게 하므로, 나 스스로를 놓아주려 하셨다. 무함마드는 말로서 옮길 수 없는 꾸란의 율법을 지켜 온전히 살라했다. 공부자께서는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본성이 망가지지 않도록 지키라 했고, 노자는 나를 잊고 도에 따라 살라 했으며, 니체는 강렬한 힘을 통해 스스로를 지켜나가라고 했다. 칸트는 냉철한 이성만이 세상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바슐라르와 베르그송은 기존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형이상학적 이미지의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워들은 말을 섬기긴 쉽지만, 내 몸과 마음을 그에 따라 단속하긴 참 어렵다. 잠언 말씀에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아버지 말처럼 지키고 섬기라 했으며, 설사 이방의 음녀가 향유를 바르고, 맛있는 술과 음식을 차려 아름다운 자태로 유혹한다 해도, 결단코 그에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이르셨다. 단순히 음욕에 관한 이야기일뿐 아니라, 결국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큰 진리를 찾아 헤매이기보다 가장 기초적인 윤리들을 잘 지키라는 말씀일 터이다.
그러므로 사실 나는 술을 줄이기로 생각하였다. 며칠 전 벗들과의 고대하던 술자리에서, 나는 고소리술, 사과증류주, 안동소주 등 모두 40도의 갖가지 술들을 세 병 이상 마시고 만취하였다. 솔직히 부끄럽게도, 나는 그 술자리 끝에서 기억이 드문드문 날아갔는데, 아내는 내 안색이 멀쩡하여 잘 몰랐다가, 무언가를 부탁했는데 내가 그저 실실 웃기만 하고, 전혀 움직이질 않아서, 아, 이 인간도 주량이란게 있긴 하구나, 하고 놀랐다고 했다. 내가 취했다는 것을 안 벗들이 간다고 하기에, 나는 또 그 때는 기억하고,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왔는데, 또 기억은 날아가서, 다만 나는 아내와 팥빙수를 먹었던 기억은 나는데,(술 마시고 나서 꼭 팥빙수 혹은 냉면을 먹는 버릇이 있음) 팥빙수를 사 온 기억은 없는데다(!), 밥 잘하는 유진이와 함께 일했던 털보 큰형님에게 9분 동안 통화한 기록까지 있어 더욱 소름이 돋았다. 평소 직장 상사가 아닌 큰형님으로서 잘 대해주던 형님이긴 하나, 혹시나 말실수를 했나 싶어 마음을 졸이다 결국 설 인사도 가장 늦게 드렸는데, 전화하자마자 형님은 크게 웃으면서, '병문 씨, 그날 진짜 만취했던데, 내가 쿠팡 쿠폰 보내니까 나더러 치킨집 차렸냐고 막 웃고, 이제 그만 독주 좀 소주처럼 막 퍼마시는 버릇 좀 버려.' 라고 하시기에 한시름은 놓았으나, 그래도 이제 나도 곧 마흔을 앞두는 나이에, 언제까지 총각 때처럼 술을 두주불사 들이킬 순 없구나, 그 때 처음 알았다. 내가 그리 깨달았다 하니, 아내도 크게 다행이라며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사실 어떤 인생철학의 아버지이건, 고명한 스승이건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늘 잘 지키며 살고자 한다. 그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북까페에서 함부로 책을 집어오지 않는(부끄럽게도 한때 그런 버릇조차 있었다. 너에게 많이 혼나고 다 돌려드렸다.) 그러한 작은 선과 마찬가지다. 술을 마실 수 있는만큼만 마실 것, 늘 하루 한 줄 이상 쓰거나 읽을 것. 기도할 것, 성경을 읽을 것. 아직까지는 잘 지키며 살고 있다. 다만 영어와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할 짬이 없어 그 것이 아쉽다. 일하는 시간이 늘 아깝다. 어쩌자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