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나는 얼어붙었다. 몸은 언제나 훈련이 잘된 어리석은 로봇처럼 움직이고 있었지만 오직 그의 확대된 동공만이 내 시야에 가득했다. 화이트아웃으로 하얗게 된 벌판에 그의 눈동자만 살아서 작고 검은 별처럼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갈대밭 가에 있는 그를 스쳐 앞으로 뛰어갔다. 눈길을 거두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를 일 미터 앞쯤에서 스쳐 지나가는 바로 그 순간, 처음 그가 나를 안았을 때 심장으로 느껴지던 그 희미한 고통 같은 것이 살아왔다. 생생한 팔의 감촉과 그의 손가락이 내 벗은 등을 쓸어 내릴 때, 용량을 초과한 듯 뛰고 있던 내 심장의 감미로운 고통,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입술이 덜덜 떨려 오던 그 감각의 기억이 일 미터라는 거리와 겨울이라는 찬 바람을 사이에 두고 다시 생생하게 느껴져 온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게 사랑이라는 거구나. 사랑을 하면 자석처럼 서로가 서로의 몸을 끌어당기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