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다. 산책로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낙엽을 이러저리 싣고 다닌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와 잎새들 있으니 유럽의 고풍스러운 어느 길을 걷는 것 같다. 어디선가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모두 소멸하는 시간. 봄에 피는 꽃이나 여름의 싱그러움보다 가을의 낙엽이 나를 더 설레게 한다. 고운 색깔, 바스락거리는 소리.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계절이 바뀐다는 게 요즘 들어 더 신비하게 느껴진다. 봄에는 꽃을 보러 고궁에 갔었다. 이 가을을 만끽하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관악수목원이 잠시 개방을 한다는데 아이 시험이 코앞이라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 같다. 이대로 가을을 보내야 할지. 자연과 상관없이 살다가도 계절이 바뀔때면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그대로 몸과 마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 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나도 봄에 무언가 꽃 피우기 위해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소설도 써보았고 수필도 써보았지만 시를 써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소설을 쓰려면 시를 읽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메리 올리버, 에밀리 디킨슨, 나희덕 ... 시는 금세 마음에 스며든다. 시를 보다보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시를 썼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다. 특히 나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 같은 시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인간은 다 느끼는 것이 비슷한건가. 사랑에 대해 이별에 대해 그 감정은 다 그런 걸까.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늘 좋을 수만도 늘 힘들 수만도 없는 것 같다. 그 어디쯤에서 매번 서성이는 나를 보게 된다. 뒤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변덕스럽고 인내심이 바닥이었는지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렇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갔던 것 같다. 온전히 나만이 알 수 있는 내 감정. 이 감정을 박제라도 해두고 싶다. 시와 노래는 그런 감정에 한껏 취하게 만든다. 아마 지금 사랑하지 않는 사람마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시와 노래가 아닐까. 이 가을에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시집을 읽으며 나의 감정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왠지 진짜 사랑과 아닌 것을 이제는 구분할 줄 알게 된 것 같다. 나에게 진짜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 것은 언제일까. 뒤돌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