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라의 이방인

지구에 사는 화성인 7

by 김정은

1

뚜껑을 열 때마다 목관의 주인에게 기도해요. 무례함을 용서해 달라고, 당신의 존엄을 훼손시키려는 것은 아니라고, 그저 당신의 세계가 궁금한 것이라고. 당신은 관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목곽 속에 미라로 누워 있어요. 뚜껑을 열기 전까지 진실은 당신의 영혼으로만 존재할 뿐이에요. 이런, 당신은 미처 미라로 만들지도 못한 채 매장되어야만 했군요. 당신이 만든 이 아름다운 무덤에서 우리는 당신을 가장 나중에 만났어요. 처음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미라를 발견했어요. 방부제로 넣었던 화학 약품 때문에 아마로 된 천 일부가 까맣게 탔지만 그녀는 놀랍게도 보존이 잘 되어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어린아이들의 뼈들이 흩어진 목관들도 발견했지요. 뼈를 맞추니 대략 8살에서 14살가량의 소년과 소녀들이었죠. 아마 당신의 아이들이겠지요. 당신 역시 삼십 대 중후반의 남성이로군요. 이 지역의 발굴을 책임지고 있는 동료 고고학자는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2천5백 년 전의 사람들이라고 알려 주었어요. 당신의 시대와 문화와 역사는 고고학자인 동료와 언어학자인 그 동료의 동료의 숙제지만, 나는 골상학자이니 당신의 뼈로 당신을 가늠해야만 하죠. 당신의 두상과 콧뼈와 하악골로 당신이 약간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졌다는 걸 알겠어요. 살아생전 당신은 섬세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어요. 외모로만 그렇게 장담하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의 무덤 안에 새겨진 조각상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글자로 새겨져 있었거든요. 당신의 무릎뼈에는 류머티즘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저런 가슴뼈가 유독 구멍이 심하군요. 당신은 천식 환자이기도 했군요. 불쌍한 당신, 당신과 당신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처음에는 이곳이 사카라 왕족의 무덤인 줄만 알았어요. 한데 우리는 벌써 당신을 포함해 6구의 미라와 뼈를 발견했지요. 온 가족이 한 번에 묻힌 것인지, 가족이 죽을 때마다 여기에 순서대로 묻힌 것인지 나는 이제 밝혀 내야만 하죠. 자아 내게 말해주세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진실을 알고 싶어 지금 나는 사막의 한가운데서 당신을 마주하고 있네요.


2

아까부터 저 일꾼이 수상해요. 수상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달리 다른 표현이 생각나질 않네요. 나는 언어학자는 아니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 주길 바라요.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어요. 우리 발굴팀이 이곳을 발굴한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요. 사카라의 모래 언덕에서 이집트 초기 피라미드 형태인 계단식 피라미드와 오래된 도시 네크로폴리스를 발견한 후 우리는 계속 모래를 파고 또 팠어요. 마침내 네크로폴리스의 어느 무덤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드러났어요. 그 입구 너머 전실에 들어서자 상형문자와 조각상들이 사방에서 나타났지요. 고대의 언어를 모두 해독하던 날 드디어 우리는 우리의 공적을 세상에 당당히 드러낼 수 있었어요. 이 피라미드의 주인이 '와티'라고 뉴스에 나간 후 그 일꾼이 나타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그는 현장 지배인 압둘에게 일꾼으로 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이곳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은 모두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사카라 지방에서 대대로 발굴꾼으로 일해 온 사람들이지요. 그러니 일면식도 정보도 없는 데다 이집트인도 아닌 그를 압둘이 받아 주었다니 그것 참 희한한 일이죠. 그런데 그가 발굴에 참여한 후로 우리는 당신을 비롯한 와티 가족 모두의 관을 찾아낸 것이에요. 와티, 재판관이기도 했던 당신의 두개골을 발견한 것도 저 일꾼이었어요. 나는 비록 증거와 논리에 따라 사실을 판단해야 하는 과학자이지만 이상해요. 당신과 저 일꾼 사이에 마치 사연이 있는 것만 같아요. 가끔 저 일꾼의 눈을 보면, 마치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 저요. 사람을 허무로만 빚으면 꼭 저 일꾼의 얼굴일 것만 같아요. 나는 당신도 궁금하지만 저 일꾼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에요. 그의 뼈를 볼 수 없으니 그의 눈이라도 보고 있네요.


3

"당신은 와티와 무슨 사이죠?" 드디어 나는 나의 발성기관을 활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와티, 당신과 달리 저 일꾼은 지금 내 앞에 존재하는 실체니 까요. 비록 손에 쥐면 어느새 흘러내리는 마른 모래처럼 저 일꾼 역시 홀연히 사라질 것만 같아요. 그는 내 질문에 전혀 동요도 없이 앉아 있네요. 심지어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내 눈은 그를 힐끗 훔쳐보지만 내 손은 와티, 해체된 당신을 조립하고 있어요. 당신의 뼈 조각들을 하나 두울 맞추다 보면 내 머릿속 퍼즐도 모두 맞춰지겠지요.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그 일꾼은 낮고 깊지만 긴장을 풀어주는 묘한 음성을 가졌어요.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던 거예요. 그는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어요. 단 한 번도 나를 바라보지도 않던 그 눈! 파란 물빛과 황폐한 사막 모두를 담은 그의 눈! 지독하게 아름다워 허무한 그의 눈! 순간 나는 그에게 빠져 버렸어요. 첫눈에 반했다는 게 이런 건가 봐요. 하지만 지금은 이 달콤한 감정보다 호기심이 더 앞서네요. 나는 로맨티시스트보다 진실을 찾고 싶은 탐정에 가까운 사람인가 봐요. 그래서 40이 넘어가도록 결혼도 하지 않았겠지요.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아! 순간 영감이 뇌리를 스쳐요! 가족들이 한 번에 무덤에 묻힌 이유는 전염병 때문이었어요. 와티와 그의 아내, 그리고 사랑스러운 네 명의 아이들 모두 전염병으로 함께 죽은 것이에요. 그래서 상형문자에는 비극이 묻어 있었고, 와티, 당신의 두개골에서 슬픔을 느꼈던 것이에요. 나는 당신의 뼈들을 더 자세히 관찰했어요. 그리고 이 찬란했던 이집트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풍토병 말라리아를 떠올렸어요. "말라리아로군요!" 나는 기쁨에 차서 그만 큰 소리로(살짝 떨렸지만요) 외쳤어요.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일꾼에게 고개를 돌렸지요. 한데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어요. 그날 이후로 압둘도 나도, 다른 일꾼들도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었어요. 그는 여기에서 반년 가까이 일했고 받은 보수는 최근에 일곱 번째 아이를 낳았다는 모하메드 짐 속에 들어 있었어요. 와티, 그는 누구인가요? 당신의 친구였나요? 2천5백 년간 당신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린 그 아름다운 존재는 당신의 무덤에서 발견된 36개의 조각상 중 유일하게 다른 얼굴을 한 조각상, 바로 그인가요? 우리는 아직도 이 거대한 피라미드 주변을 발굴하고 있어요. 나는 이제 그 아름다운 존재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싶어요. 사막의 모래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하고 싶어요. 와티, 내 꿈속에라도 찾아와서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사카라 무덤의 비밀>(2020)에서 영감을 얻어 썼습니다.

대문 이미지: Photo by Mo Gabrai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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