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구에 사는 화성인 6

by 김정은

모래 폭풍이 지나간다


빙산의 일각처럼

사구 사이로 드러난

하얀 경비행기


부식된 꼬리 날개 위를 훑는

태양빛은 마치,

우주는 곧 슬픔이라며

그래서 물리학은 슬픔의 역사학이라며

텁텁한 목소리로 강론하는

물리학 교수 같아서


한낮의 희비극

게슴츠레 눈을 뜬

쌍봉낙타 두 마리만이 온전한 관객


모래 속에 피어 난

하얀 고철의 오래된 유언은

연극의 대사처럼

사방으로 흩날린다


'Don't find me but don't forget me'


모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백 년 전 파 묻힌

경비행기와

늙고 수더분한 쌍봉낙타 두 마리와

입안에 짠내를 풍기며 방랑하는

어떤 존재가

어린 왕자를 따라

소행성으로 훌쩍 가버린

사막을 사랑한 한 친구를 추억한다


'Don't find me but don't forget me'


못 돌아올 여행을 떠난 그의 마음을

모래 폭풍은

다 안다는 듯

가끔, 아주 가끔

사막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모래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낙타와 함께 길을 떠나는 화성인의 발자국...


그대여

그대는

외롭고 또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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