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안나푸르나는 8,000미터에서 6,000미터가량 높이를 가진 1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등반가들이 대개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다고 하면 가장 높은 1봉을 가리키는 것이죠. 안나푸르나라는 용어는 산 스크리트어로 '가득한 음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영원한 방랑자인 화성인은 지구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에게는 마음 붙일 곳은 있어도 영원히 발 붙일 고향은 지구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의 안식처는 고향 화성뿐입니다. 맨 처음 물고기의 가죽을 쓰고 물 밖으로 나온 날, 그는 제일 먼저 인간들의 세상으로 들어갔지만 사랑하는 인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 후로 그는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다닐 뿐입니다. 툰드라의 끝에서 만난 네네츠족 유리의 가족들 덕분에 잠시나마 인간의 온기를 느낀 화성인은 그러나 여전히 고독을 좇습니다. 그는 허무와 고독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니까요
그러다 흘러들어 가게 된 네팔의 한 마을에서 아주 늙고 초라한 탁발승을 만나게 됩니다. 100세인지 200세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늙은 탁발승은 이는 이미 다 빠져 죽만 간신히 삼키며 살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을 본 화성인은 그 속에 넘치는 물을 봅니다. 그의 정신은 물처럼 고요하면서도 방금 물속에서 튀어 오른 물고기처럼 생생하고 싱싱합니다. 그가 만나본 지구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그의 모습에서 화성인의 흔적조차 발견됩니다. 탁발승 역시 남루한 옷을 입고 지칠 대로 지친 한 남자에게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근본적인 끌림을 느낍니다.
"자네는 지구 사람이 아니네그려"
"제가 지구인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산 스크리트어를 아는 이방인이지"
탁발승은 그를 보면 씨익 웃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몸짓을 합니다. 빛바랜 적삼을 말라서 뼈뿐인 육체에 두른 탁발승은 어기적 어기적 길을 걷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에는 거대한 산들이 웅장하게 둘러쳐져 있습니다. 산 대부분은 만년설로 덮여 있습니다. 지구에 신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산의 모습으로 존재할 거라고 화성인은 생각합니다. 그는 지구 어디서건 신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구가 가진 대자연의 모습 속에서 화성인조차 감각하지 못하는 어떤 존재가 스며들어 있음을 느끼게 되지요.
"여기는 어디입니까"
"안나푸르나"
"여기는 어디입니까"
"자네가 묻힌 곳이지"
탁발승은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아직 어린 동자승이었을 때, 세르파였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말입니다.
"나는 저기 저 안나푸르나의 빙벽 사이에서 태어났다네. 아버지는 멀리 어느 나라에서 온 푸른 눈을 가진 흰 사내를 안내하고 있었어. 그 사내는 자신이 정상에 서게 되면 유럽이라는 먼 나라에서 최초로 이곳을 정복한 왕이 되는 거라고 했지.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 안나푸르나의 정상에 올라서는 것이 왜 안나푸르나를 정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푸른 눈의 백인 청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 아버지의 마을 사람들은 수 천년 간 이곳에 살아오면서 정상을 오르내릴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어. 필요치 않았으니까. 백인 청년처럼 젊었던 아버지는 그의 짐을 지고 정상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줬어.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지. 정상을 몇 백 미터 놔두고 갑자기 그 청년은 아버질 앞질러가기 시작했어. 아무래도 정상으로 내딛는 첫 발자국이 셰르파인걸 알면 그의 영광은 조금 희석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그런데 청년은 알지 못했어. 아버지는 풀 숲에 숨은 독사의 흔적처럼 빙하 아래 조용히 숨어 있는 교활한 크레바스의 틈들을 조심스레 건너며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그 청년은 정상을 불과 눈앞에 두고 그만 크레바스를 딛고 말았어. 거대한 악어의 입처럼 크레바스는 그 청년을 먹어 삼켰지. 크레바스가 어찌나 깊었는지 청년의 비명 소리가 거의 5분은 넘게 지속되었다더군. 아버지는 그의 짐을 지고 다시 길을 내려왔어. 안나푸르나의 여신이 그의 영혼을 지켜주시길 기도하며 말이야. 그런데 중간 지점을 내려왔을 때 올라올 때 미처 보지 못한 빙벽 틈 사이에서 발가벗은 아기가 꽁꽁 얼어 있었다는 거야. 희한하기도 하지. 이 험준한 산에 갓난아이 혼자 올라왔을리도 없고 그렇다고 임산부가 이 산을 올라올 리 만무하고 말이야. 아버지는 얼어있는 그 아이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속에 갇혀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가지고 있던 칼과 주위의 돌들로 얼음들을 깨고 아이를 꺼내 집으로 데려왔어. 죽은 아이를 데려왔다며 아버지의 어머니는 그를 나무랐지. 하지만 아버지는 어쩐지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 불 옆에 그 아이를 두고 아버지는 밤을 새웠어. 아이가 살아난다 해도 젖을 물릴 처자 한 명 없는 그 헛헛한 곳에서 말이야. 아이는 하루 하고도 다시 사흘이 흐른 후 갑자기 깨어나 힘차게 울었지. 아버지는 염소젖을 짜서 아이에게 물렸어. 아이는 염소 젖을 먹지 않고 뱉어 내며 마구 울었지.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힘차던지 마을 옆 깊은 계곡 사이로 아이의 울음소리는 메아리쳐 퍼져 나갔어. 그리고 며칠 후 한 여인이 나탔났지. 아버지는 홀린 듯 그 여인에게 아이를 내주었어. 여인은 아이에게 자신의 젖을 물렸어. 그렇게 그 여인과 아버지는 결혼을 했고 8명의 아들을 낳았어. 그 아들들의 아들들의 아들들이 여전히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승려가 되어 내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도했네. 나는 먹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틸만했고,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튼튼하게 살 수 있었다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안나푸르나의 정상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했어. 나는 아버지의 시신을 등에 지고 그곳을 올랐다네. 아버지의 시신을 정상에 올려두고 하룻밤을 지새우며 나는 산에게 물었네. 나는 당신의 아들이냐고. 산은 내게 대답해주었네. 언젠가 나를 찾아오는 한 존재가 있을 거라고 말이야. 남자이지만 남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도 아닌 어떤 존재가 나를 방문하면 알게 될 거라고 말이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자네를 만났네"
"저는 화성에서 왔습니다"
"그래... 그랬었구먼... 그랬어.."
이 말을 마친 탁발승은 산을 마주 보며 앉은 채로 죽습니다. 화성인은 이 노인의 아버지처럼 그를 자신의 등에 지고 안나푸르나를 오릅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없었지만 봉우리의 끝을 보며 본능적인 감각에 의지한 채 오르고 또 올라갑니다. 그러다 절반쯤 올랐을 때 암석과 암석 사이에 생겨난 작은 동굴을 발견합니다. 화성인은 다시한번 본능적으로 그곳이 그 탁발승이 태어난(발견된) 장소임을 알 수 있었지요.
'그는 태어난 장소로 돌아갔다. 나는 그 사내가 나와 같은 종족인 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산에게 물었다. 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무엇입니까. 그에게 대답했던 산은 그러나 내게는 침묵했다.'
미스터리한 탁발승은 이제 이곳 안나푸르나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이곳을 등반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는 등반가들과 셰르파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겠지요. 고대의 전설 같은 한 사내가 안나푸르나에 누워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