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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pr 18. 2023

당선이 취소되었다

캐나다의 겨울은 참 길기도 길다. 내가 사는 곳은 캐나다에서도 미국과 인접하여 가장 남쪽에 해당하는 곳인데도 10월 말부터 4월 초순경까지 6개월이 겨울이다. 추위에 유독 약하다 보니 캐나다에서 두 번의 겨울을 나면서 두 번 모두 지독하게 아팠다. 첫 번째 겨울에는 이제 막 낯선 나라에 와서 어학공부를 시작하니 몸이 힘든가 보다 했는데 두 번째 겨울에도 내내 헐 피스를 달고 살았다.


1월 말에는 결국 감기에 걸렸는데 한 달 가까이 몸져누운 날이 더 많았다. 학교 수업에도 자주 빠져 수업을 보충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늦은 공부를 하니 몸이 영 낫질 않았다. 결국 3월경 한약을 지어먹었더니 체력이 회복되어 좀 살 것 같았다. 몸은 아프고, 학교 수업은 따라가기 벅찬데 외국인 클래스메이트들과 팀을 이뤄서 하는 과제가 많아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1월과 2월이었다.


작년, 그러니까 2022년에 시 분야로 여기저기 공모전에 접수를 많이 했더랬다. 대부분 우편접수가 많아 해외 거주 중인 나로서는 온라인 접수를 하는 공모전 위주로 신청을 하긴 했지만 결과는 줄줄이 탈락이었다. 탈락도 한두 번이지 여러 번 탈락하다 보니 시에 대한 자신감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냥 시를 쓰는 사람이라 '시인' 말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제삼자에게 '시인'으로 인정받고 등단하고 싶었다. 등단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작년 말경에 작은 시 동인지에 신인상으로 응모해서 선정이 되었는데 등단비가 50만 원이라고 해서 등단을 포기한 적이 있다. 등단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 시가 정말 좋아서 당선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공모전 주최 기관의 응모 조건을 꼼꼼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작년 9월부터 칼리지 본과에 입학하면서 글 쓰기가 녹록지 않아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그래서 7월과 8월에 글을 최대한 많이 썼던 것 같다. 시도 그때 많이 썼었다. 연말이 될수록 학교 수업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어도 기대만큼 늘지도 않았다. 그리고 11월 경에 모 시인협회 신인상으로 응모한 공모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공모전을 쫒지 않기로 결심했다. 만일 이번에도 당선이 되지 않으면 시 쓰기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 캐나다에 유학 온 목적을 생각할 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1월 중순이면 결과가 나올 것인데 개인적으로 연락이 없어 이번에도 당선이 안 됐다는 사실에 꽤나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더 몸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취미로서의 시 쓰기, 브런치에서의 글 쓰기 모두 다 포기했다. 브런치에도 거의 접속하지 않았다. 일부러 학교 수업에 더 집중했다. 몸은 계속 아팠다. 글쓰기를 포기하는 일이 내게 꽤나 힘든 일이었나 보다.


한약을 며칠 먹고 나서인지, 매서운 겨울바람이 잠잠해져서인지 몸이 점차 회복되자 마음의 여유도 차차 생겨났다. 시인협회 카페에 한동안 발을 끊었다가 거의 두 달 만에 접속했는데 청천벽력의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신인상 당선자로 내가 선정이 되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당선이 취소되었다는 글이었다. 개인 쪽지로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내 쪽지함에는 스팸메일이 수백 통이 쌓여 있었고 내가 한참 아파서 정신없을 때에 쪽지 연락이 왔던 터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허탈하고 또 허탈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협회 담당자에게 개인적으로 메일도 보내고 연락도 했지만 소 된 당선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나는 딱 3일간 괴로워했다. 등단의 기회를 내 불찰로 놓쳐버린 것이 그렇게 스스로 미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이 일로 괴로워하기에는 당장 내 앞에 놓인 과제가 산적했다. 칼리지 수업을 만만하게 봤다가 이번학기에 제대로 큰 코를 다치고 있기도 했다. 이번주에 학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마지막 남은 과제도 모두 제출했다. 하나 두울 평점이 올라오고 있어 정말로 학기가 다 끝난 기분이다. 과제를 낸 직후부터 주말부터 내내 미뤄두었던 집안 대청소를 실시하고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창고에 가득 쌓인 묵은 짐들을 버리고 이곳저곳 걸레로 박박 닦아내니 마음의 묵어 있던 찌꺼기들도 하나 둘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등단의 기회는 비록 놓쳤지만 이 마저도 감사한 일이다. 계속 시를 써도 된다고 누군가에게 허락받은 기분이다. 길고 길었던 캐나다의 겨울도 드디어 끝이 나고 봄이 왔다. 내 마음에도, 작가라는 나의 페르소나에게도 한줄기 빛이 비치고 있다. 언제 가는 저 작디작은 수선화처럼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때가 올 것이다. 길었던 겨울 덕분일까 이곳의 봄은 더더욱 소중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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