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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호 Apr 29. 2024

쥐꼬리만 한 자존심

단편 소설

아내는 나를 위로하면서

공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한다.


공수는 면접 보았던 지자체에서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내 친구다.


왜 궁금하지 않아?

당신의 스펙으로 떨어진 이유가?

원인을 알아야 처방을

할 수 있는 거 아냐?


안녕하세요? 저~ 은태 씨 아내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네 갑자기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왜? 은태한테 무슨 일 있나요?


다름이 아니라 애들 아빠가

공수 씨 근무하는 곳에

조경관리 기간제 근로자로

지원을 했는데 떨어졌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면접 볼 곳이

두 군데 더 있어서 원인을 알아

대처해 볼까 해서요.


아 네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데

조심스럽게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공수 씨 직접 저한테로 전화 주세요.

애들 아빠가 자존심이 센 편이라

이번에는 내가 직접

코치를 해야 되겠어요.

어려운 부탁드려 죄송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김공수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은태는 지금도 멋 부리고 다니나요?

네 아직도

그 알량한 대기업 부장이랍니다.

미치겠어요.


제수씨! 알아보니 답은 간단해요

막노동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고 합니다.

정신 상태부터 고쳐야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을 내려놓아야 되는데

은태가 가능하겠어요?

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감사합니다.


송은태의 잘난 체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꺾어야지 암 하고말고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30년이 비참해져~


아내는 전철을 타고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옷가게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모두 도시스러운 옷들로

 재래시장 옷가게는

멋을 잔뜩 부리고 있다.


무슨 보따리여?

당신 옷!

요즘 입을 옷 많은데?

면접 때 입을 옷!

뭣이여?

아무튼 당신은 못 말여

이 옷을 어떻게 입어?


당신은 마음가짐이 틀려먹었데요

아무 말 말고

 이번 면접 때 입고 가세요.

명령이야!


노후를 생각해 봐?

누가 돈을 준데?

 당신 연금만 가지고는 인간답게 못살아

지금은 저축해 놓은 것이 있어 

견디지만

몇 년 후부터는 택도 없어

정신 차려 송은태!


은태는 아내가 바라는 차림새로

면접장으로 향하지만 지난번과 달리

어깨가 축 처져있다.


고개를 숙이고 면접장 입구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앉아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툭 친다.

고개를 들어 보니 

중학교 동창생 일권이다.


은태야 오랜만이다.

일권이는 반가워서 두 손으로

은태의 손을 감싸면서 꼭 쥔다.


은태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너도 기간제 근로자 해 보려고?

네가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냥 집에 있다 보니 

심심해서 와 봤어.


은태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일권이하고 나하고 동급이라고?

내가 일권이하고 함께 일을 한다고?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고

S기업 부장까지 했던 사람이야.

일권이는 고작 중졸이야.

말도 안 돼?


내 마음은 아직 이런 상황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돼.


일권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중동 건설현장등 주로

외국 건설현장에서 

근무했던 친구다.

힘쓰는 일에 잔뼈가 굵은 친구다.


일권아! 화장실에 갔다 올 테니

이 자리에 잠시 앉아있어.

그려 기다리고 있을게.


은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집 앞에 있는 실내 포장마차로 갔다.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와

횡설수설하다 보니

아내는 안방 문을 쾅!

닫히고 들어가 버린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소파도 아니고 거실 바닥에 누워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체를 일으켜 소파에 기댄 채

미안한 얼굴로 아내를 쳐다본다.


뭐시여?

일권 씨가 호랑이여. 당신을 잡아먹냐?

너는 무슨 별난 인간이냐?

일권 씨는 당신 고향친구 아니냐고?

일권 씨는 당신이 얼마나 반가웠으면 

악수도 아닌 두 손으로 

당신 손을 꼭 잡았을까?

당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

일권 씨 마음은 어떻겠어?


단지 집이 가난해서 못 배웠을 뿐이야?

당신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을 

소환해 원망했을 거고 

현실에 놓인 

자신이 얼마나 비참했겠어? 


그 잘난 엘리트니 스펙이니

 따지지 말고 

인간이 돼라 송은태!


나이 먹어 많이 배웠네 하면서 

똥폼 재는 놈들은

자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리면서 

외롭게 혼자 살다 죽는 법이여


 나이 먹으면 지식보다

교양과 상식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법이여


임원도 되지 못하고 

부장으로 끝난 이유를 알겠어.


내가 못된 인간성을 가진 당신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 비참하다.


자존심 때문에 인간성 마저 저버리면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여.

내가 봐도 정 떨어지는데

누가 당신을 좋아하겠어?


틀렸어! 틀렸어!


아내가 소리를 지르다 말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마누라 보다 세상을 모르는 인간아!

지지리도 못난 인간아!

  쥐꼬리만 한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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