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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Apr 06. 2021

나의 커피이야기


주말이면 남편과 아침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내려 마신다.

보통 토요일은 적당히 늦잠 자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의미로 마시고, 일요일은 오전에 함께 집안 청소를 싹 마친 후 노동의 보상으로 마신다. 열심히 일하고 마시는 시원한 커피 한잔은 일의 마침표를 찍는 듯 깔끔하고 개운한 기분을 선사해 준다.  


언제 한 번은 꼭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게 오늘인지 아침부터 머릿속에 커피에 대한 여러 기억과 생각들이 떠올랐다.




노란 봉지의 믹스커피가 나오기 전에는 갈색 알갱이로 병에 들어있던 커피, 끈적한 분유 맛 가루였던 프림, 하얀 설탕. 이 삼총사는 대부분의 집에 있지 않았나 싶다. 커피 2, 프림 3, 설탕 2와 같이(단위는 티스푼이다) 세 가지를 각자 입맛대로 넣고 적당량의 온수를 부은 후 휘휘 저어 만들어 먹던 음료가 어른들이 마시던 커피였다. 나도 부모님이 드시는 모습을 보며 커피를 처음 알았고, 그 달콤 쌉싸름하면서 밀도 높은 향을 가진 어른들의 전유물에 관심이 많았다. 엄마가 커피를 타서 마실 때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어른들의 세계에 제비 새끼처럼 몬내 몬내 한 입 얻어먹으려 하면, 정 많은 우리 엄마는 한 숟갈 두 숟갈 입에 넣어주고 오메 그렇게 맛있냐~ 하며 흐뭇해했다.


정확하않지만 중학교 시절에는 내 수준에 맞춘 커피를 나도 마셨다. 한두 숟갈씩 주던 엄마가 안 되겠었는지 '프리마 차'를 가끔 먹을 수 있게 허락한 것이 계기였다. 커피는 몇 알갱이로 색을 낼 만큼 들어갔고, 프림 3~4스푼에 설탕 2스푼 정도 들어갔던 것 같다.(완전 고칼로리였을 듯) 부모님이 커피 드실 때 나도 한 번씩 베이지색 프리마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없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참 맛나게 아껴먹었더랬다. 


사회인이 된 회사생활 초반도 커피를 그렇게 타 먹는 식이어서 소속 부서 임원, 팀장들의 커피 취향을 메모해 두고, 다른 임원분들께 드려야 할 때도 있어서 임원 전체 커피 취향을 리스트로 정리했던 자료도 있었다. 커피에 설탕만, 커피에 프림만, 아니면 세 가지 다 믹스였고, 오로지 커피만 넣어 드시던 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윗사람과 손님, 각자 마실 커피까지 타느라 커피, 프림, 설탕이 담긴 통이 있던 탕비실은 흘려진 가루들로 눌어붙거나 어수선하기 일쑤였다.  삼총사가 최상의 조합으로 1잔 단위의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디카페인) 옷을 입고 널리 퍼지면서 탕비실과 직장인은 광명을 찾았던 것 같다. 맛을 극대화할 물 조절이 관건이었지만 그 감은 몇 번이면 되었고 아주 손쉽고 빠르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의 믹스커피는 가슴 먹먹한 아픔이었다. 뷔페에서 일한 후 남은 음식을 가져와 할머니께 다 드리고 지안이는 회사에서 슬쩍 가져온 믹스커피를 한 번에 두봉, 세봉 넣고 타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직장인의 지친 일상 속 한숨 돌릴 여유를 주는 걸로만 알았던 커피에 대한 반전이었다. 늘 막막한 삶을 살던 지안에게 믹스커피는 아픔이자 외로움, 그리고 소중한 한 끼였다. 마지막 지안이 직장동료들과 평범하게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에 안도했고 기뻤다. 그때 동훈이 묻는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지안이 대답한다. 네.라고. 편안함은 곧 평범함이었다. 그 속에서 커피는 지안에게 더 이상 아픔이 아닌 여유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이제는 도심지 어느 길 어느 곳에서나 몇 걸음이면 원두커피 전문점을 만날 수 있다. 체인점부터 개인점포까지 종류도 가격도 매장도 정말 다양하다. 주문하면 바로 원두를 갈아 신선한 커피를 내어준다. 삼총사 넣고 휘휘 저어먹던 우리 회사도 지금은 사내 카페가 있어 직원들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원두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미 믹스커피만큼 원두커피가 대중화된 상황에서 코로나가 홈카페까지 활성화시켰다. 나도 집에서 커피를 내려마시지만 주로 아메리카노이고, 어쩌다 가끔 우유에 샷 섞어 까페라떼를 만들어먹긴 하지만 기술이 없어 투박하다. 제대로 된 홈카페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어쩜 그렇게 예쁘게 커피도 마시고 주방과 집도 예쁜지... 나에게는 모두들 넘사벽이다.


'커피 한잔의 여유'라는 오랜 광고 때문인지 모르지만 커피는 그 실체보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여유'라는 이미지의 맛이 강한 기호식품이다. 그래서 바쁜 현대인들보다 더 바쁜 한국사람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도 여전히 커피가 좋다. 내가 어디에 있든 커피 한잔이면 한숨 돌리게 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위안을 얻게 된다. 혼자 마셔도 좋지만 좋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도 행복이다. 최근 1~2년 사이 남편이 뒤늦게 커피에 눈을 떠 지금 커피맛에 흠뻑 빠져있다. 서로 알만큼 아는 사이에서 새롭게 같이 나눌 수 있게 된 게 커피라서 기쁘다. 함께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순간이 더 많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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