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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May 04. 2021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그날

5월 5일 어린이날

올해도 시험에 들었다.

지금 머릿속이 매우 복잡하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우리 집 공식 어린이는 초4 딸 둘째다.

둘째가 갑자기 어린이날 선물로 파자마 파티를 열어달라고 했다.

친구 3~4명 초대해서 하루 같이 놀고 싶다고 말이다.

아직 코로나 진행 중이고, 지난주에는 다니는 학교에 확진자까지 나온 이 상황에?

방역 지침에 위배되니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고, 다른 선물을 얘기하면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다음 선물은 아이패드란다.

아. 이. 패. 드.

우리 집도 애플의 습격이 시작되는 것인가.


딸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툭하면 스케치북, 연습장, 종이에 각종 그림을 그리곤 한다.

티브이를 보다가 캐릭터를 따라 그리기도 하고,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그리기도 하고, 만화 몇 컷을 그리기도 하고... 암튼 심심하면 그림을 그린다. 그림 실력을 떠나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그 관점에서만 본다면 요즘 세대와 아이의 취향에 맞게 원하는 선물해 줄 만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초등학생에게 합당한 가격인가를 생각하면 깊은 고민에 빠진다.

아이패드를 초등학생용으로 출시년도, 용량 등을 감안해 구입한다 해도, 전용 펜까지 포함하면 5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중고도 생각만큼 싸지 않았다.


아이에게 있으면 좋긴 하겠다는 생각, 큰 비용에 대한 고민(투자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만큼의 가치와 효용 유무, 고가의 물건들을 쉽게 얻는 것의 부작용, 아이의 바람, 그 바람을 접을 때 필요한 충분한 설득력, 예측되는 아이의 실망감..... 사주든, 사주지 않든 찜찜함이 버무려질 게 뻔한 이 상황.


돌이켜보면 언제부터 우리 집 어린이날 선물 수준이 이렇게 높았나 싶다.

큰 애 때부터 지금껏 어린이날 선물에 고액을 써본 적은 없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로서 행복한 날로, 축하와 사랑을 받으면 되는 날인데. 원하는 선물이 전혀 소박하지 않다. 그게 요즘 어린이들의 기준이 된 걸까. 큰애와 둘째 사이에 또 시대가 바뀐 것인가. 나와 남편이 여전히 너무 옛날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아이패드도 아이가 좀 더 컸을 때 고려해보기로 했다.

이제 둘째 아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이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아이가 세 번째로 원하는 선물은 무엇일지... 또 어떤 벽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겠다.



* 덧: 올해는 어린이날 선물에 대한 고민이 너무 늦었다.

미리 상의하고 선을 그어놓았더라면 내가 덜 휘둘렸을 것이다.  

딸이 어린이를 졸업하려면 두 번 더 남았는데, 앞으로는 꼭 아이와 미리 의견을 나누고 정해야겠다.


** 최종 결과 덧: 아이가 너무 극과 극이다. 아이패드 다음으로 갖고 싶은 건 '말랑이'란다. 요즘 애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말랑한 손 장난감으로, 가격은 하나에 1천 원에서 3천 원 정도 한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이번엔 내 입이 아이에게 좀 더 좋은걸 말해보라고 했다. 아이패드가 안된다면 말랑이를 받겠단다. 갑자기 미안해졌다. 내일은 아주 많이 놀아주고 사랑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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