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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Sep 02. 2021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

작은 나눔 이야기


오늘 회사에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나는 2주 전부터 그 미팅에 제공할 워킹 런치와 선물을 준비했고, 점심시간까지 그 일에 매달렸다. 최고 경영자 포함 임원급이 참석하는 자리인데 일정도 빡빡하여 간단하면서 가볍지 않게 마련해야 했다. 간단한 게 제일 어려운 것임을 실감하며 정신없이 일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가 되면서 내가 맡은 일은 마무리되었다. 긴장 속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반 녹초가 된 상태였는데 마침 홍삼음료가 선물로 들어왔다. 한숨 돌릴 만한 상황이 되어 음료를 나누기로 했다. 나눠 먹을 무언가를 받게 되면 주로 팀원들과 나누지만, 언제부턴가 주변에 오늘 힘들었을 사람, 고마움을 전하면 좋을 사람을 찾아 함께 나누려 한다. 




미팅은 아직 진행 중이었고, 거기 참석해 있는 임원들의 운전기사가 떠올랐다. 홍삼음료를 들고 대기실을 찾으니 예상대로 세 분이 둘러앉아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나를 보며 오늘 고생 많다고 인사해 주신다. 한 가정의 가장, 든든한 남편, 아이들의 아빠인 아재들이, 모시는 분의 일정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주식이 어떻고 부동산이 어떻고 떠들고 있는 그 풍경이 오늘따라 짠내 나면서도 어찌나 정겹던지. 그 자리에 감칠맛을 더해줄 무언가가 내 손에 있음을 감사하며, 오늘 일정이 긴데 하나씩 드시라고 홍삼음료를 나눠드렸다. 주식과 부동산에서 "어이구~~~ 고마워요~~" 하며 갑자기 내 칭찬으로 화제가 바뀐다. 머쓱해져 너털웃음으로 얼른 인사드리고 나왔다.


자리에 돌아오니 오늘 미팅을 주관하고 있는 부서가 보인다. 쉬는 시간이어서 직원들이 잠깐 자리에 와 있었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준비하며 힘들었을 그들과도 음료를 나누었다. 이제 끝나간다고, 수고 많으셨다고 인사하며 나눠드리니 별거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선물에 상당히 고마워해서 내 마음도 좋았다.


마지막 음료는 우리 층 청소를 담당해 주시는 미화 직원 분 것이다. 회사에서 고마운 사람 생각하면 빠지지 않고 떠오른다. 이러쿵저러쿵 직원들에게 잔소리 격 말이 많으셨던 예전 분과 달리 참 묵묵하신 분이다. 회사가 외부 식사 자제를 방역 수칙으로 하다 보니 사무실에서 음식 포장 쓰레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직원들에게 잔반 분리수거하고, 음식물 용기는 꼭 씻어서 버려달라는 공지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 뒤처리는 모두 미화 직원 분의 몫이 되는데, 묵묵히 처리하시는 모습이 죄송하고 고맙다.


그녀가 퇴근한 시간이어서, 내일 아침에 보실 수 있게 포스트잇에 간단히 메모했다. "드시고 하세요. 감사합니다~ oo 부 드림." 음료에 붙여서, 그녀가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에 잘 보이게 두었다. 이른 아침 청소 시작하시기 전에 드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번은 아침에 시루떡이 부서 선물로 들어왔는데, 막 떡집에서 온 거라 구수한 향과 따끈함이 너무 좋아서 온기가 식기 전에 얼른 팀원들과 나누고 그녀에게도 부서 이름으로 조금 챙겨드렸다. 나중에 내가 드린 것을 어떻게 아시고는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해 주셨다. 이 음료도 그분의 하루에 작은 힘이라도 된다면 좋겠다.

 



홍삼음료 몇몇에게 나눈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장황한가 싶지만, 나누면서 내 속에 차오른 힐링 감을 글로 기억하고 싶었다. 녹초가 되어 퇴근시간만 기다릴 오후였는데, 오늘 나처럼 힘들었을 이들, 고마운 이들과 나눈 음료가 한병 한병 내 손에서 그들 손으로 건네 질 때마다 나는 되려 온기를 받았다. 따뜻한 에너지가 마음에 차고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힘든데 힘들지 않은 마음이 되었다. 아주 작은 나눔의 순간을 통해 서로에게 힐러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주변 동료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나누어보자. 요즘같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긴 대화도 나누기 어려운 때에 건강음료 하나, 달달한 간식 하나. 짧은 말 한마디와 함께 츤데레처럼 불쑥 나눠보면, 주는 손과 받는 손 사이로 서로가 보듬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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