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썹달 Oct 03. 2021

내 사전에 무알콜 맥주라니


무알콜 맥주를 처음으로 사서 마셔봤다. 못 마실 정도의 맛이면 어쩌지 했는데 오. 생각보다 꽤 괜찮다. 

세 가지 브랜드 제품을 마셔봤는데 두 가지나 마음에 드니 다행이다. 목구멍 따끔하게 하는 특유의 탄산, 맛과 향도 비슷했다. 내 사전에 무알콜 맥주라니. 생각도 못했지만 선택해야 했다. 몸에 더 이상 알코올을 들이기는 싫은데 술을 마시는 느낌은 필요했으므로.



술과 매우 친했던 때는 대학시절이었다. 본래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는 변변찮았던 수능 결과로 성적에 맞춰 통학 가능한 거리의 대학에 진학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서울 한 곳의 작은 대학, 그 학교의 신생 학과 첫 입학생으로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정식으로 마시기 시작했던 술은 그동안 꽉 닫혀있었던 내 안의 포텐을 터트려준 소울 드링크였다. 


여중, 여고 6년간 다니다 남녀공학 캠퍼스라니.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선배도 후배도 없었기 때문에 동기들끼리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다. 자주 모여 함께 먹고 마셨다. 술, 그중에도 소주는 쓰고 독한데 묘하게도 달았다. 그걸 가운데 두고 철없는 청춘들이 모여 시작되는 술판은 언제나 즐겁고 신이 났다. 나는 제일 쉽게 분위기 타고 제일 쉽게 취했다. 들뜬 기분에 술이 들어가면 목소리가 커지고 난데없는 유머와 위트가 내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렇게 웃고 마시고 취하는 시간들이 쌓여 주변에 사람이 많이 생겼다. 어느새 '두껍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조금 후에는 고맙게도 '이슬이'로 영롱하게 바뀌었다. 내가 블랙아웃 될 때마다 등 두드려주고, 기다려주고,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던 착한 동기들 덕에 안전하게 귀가했지만 오늘의 주사 이력은 내일의 술판 메뉴가 되어 늘 도마 위에 오르는 수모를 감당해야 했다. 그 수모를 다시 소주와 함께 섞어 마실 만큼 술과 동기들과 노는 일에 열심이었다. 물론 마시지 않을 때는 학업과 학과 부대표의 일도 충실히 했다. 술과 함께 여러 면에서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경험을 했던 시절이었다.



사회에 나가서도 한동안 흥건하게 마시는 습관이 고쳐지지 않아서 고생했다. 기분이 업되면 제어 장치가 고장 났고, 다음날 죽도록 후회하는 일이 수 차례 반복되었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던진 오늘의 유쾌함은 내일의 불쾌감으로 부메랑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숙취로 사무실 책상이 빙빙 도는 상태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매일 어김없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하는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그런 사이클에서 몸을 가장 빨리 축 내는 일이 음주임을 깨달았다. 그 후 이어진 결혼, 출산, 육아. 취할 새 없이 돌아가는 날들 속에 소주와 이별을 고하면서 과도한 음주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힘든 날 퇴근 후 한잔, 주말에 남편과 한잔씩(주종은 맥주다) 하는 정도로 즐겨오고 있었는데 그 또한 오랜 세월 지속되니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중년에 들어선 나이, 좋지 못한 기억력과 건망증, 만성 근육통, 수면의 질과 체력 등등... 전반적인 신체건강에 대해 걱정이 커졌다. 양과 횟수를 줄이니 주량은 현저히 줄었고, 그 줄어든 만큼에서 조금만 알코올이 넘쳐 들어오면 몸이 바로 느꼈다. 이제는 그 마저도 하지 말자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꼭 그 한잔이 생각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아, 무알콜 맥주라는 게 있었지?!!' 하게 된 것이다.  



한창때 그렇게 술 마셨던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적당해야 좋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였다. 특히나 술처럼 몸과 정신을 쉽게 흩트리는 것에는 그 적당함이 더욱더 중요하다. 건강 염려증이 가져다준 또 하나의 다짐을 다양한 무알콜 맥주로 승화해보려 한다. 두꺼비에서 이슬이, 이제는 무슬이를 소망하며.

작가의 이전글 첫 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