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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Jul 02. 2023

강아지 우비

사랑이란

가랑비 내리는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의 시야에 한 아저씨와 강아지가 들어왔다. 


천천히 걷는 주인어른 뒤로 45도 각도 즈음에서 강아지도 목줄 없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주인과 함께 나이 든 노견 같아 보였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으니 종종걸음의 나는 금세 그들 가까이에 도달했고, 가까이서 보니 강아지는 우비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보통의 애견용품 점에서 볼 수 있는 강아지용품이 아니었다. 집에 남는 재료로 최소한의 디테일을 갖춰 만든 듯한 홈메이드 우비였다. 얼핏 보니 못 쓰게 된 어른 우비의 일부를 아이에게 맞게 자르고 테두리를 박음질하면서 목 부분에 컬러 있는 원단을 덧댄 듯했고, 처지지 않는 소재(꼭 미용실에서 펌이나 염색할 때 이마에 붙여주는 팔랑거리는 필름지 같은 것)로 머리 부분도 젖지 않도록 나름 신경 쓴 디자인이었다. 그 우비를 입고 유유히 주인을 따라 걷는 강아지와 아저씨를 보면서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사랑이 별 것이라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마음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때. 그렇게 설레고 뜨겁던 때를 지나 중년으로 가고 있는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노력해서 더 많이 주어야만 사랑이 아님을 안다. 무엇이든 너무 힘주어 애쓰지 않고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었다. 서로 할 수 있는 만큼 발을 맞춘 사랑은 이미 깊게 삶의 곳곳에 녹아 그 모습을 한껏 드러내지 않기에 살면 살수록 사랑이 별 건가 싶어 진다.


가진 것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한

소박하고 투박해도 무엇보다 다정하게 다가오는 마음. 


애들 잘 있는지, 별일 없는지, 오늘 하루 잘 지냈는지 묻는 가족의 안부 전화. 건강한 목소리, 좋은 소식 또는 힘든 소식에 건네는 기쁨과 위로, 늘 그 자리에서 함께 웃고, 울고, 서로 가엾기도 하고 그래서 애틋하고 그래서 다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아저씨의 강아지 우비처럼 사랑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보여주는 것임을 가랑비 속에서 촉촉이 느꼈다. 나도 사랑하는 이들을 그렇게 보듬고 살아가고 싶다.



사진: UnsplashSuhy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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