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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썹달 Jul 15. 2023

사랑을 고백하는 일

이른 아침 큰 애가 거실에 나와 있었다.


출근 준비하는 나를 보더니 "엄마..." 하며 불쑥 울먹였다.


무슨 일인지 놀라 물으니

엄마가 죽는 꿈을 꾸었다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투둑. 이내 엉엉 울며 나를 끌어안았다.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은

한 편의 악몽에 엄마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고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엄마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사랑합니다."


아, 이건 내 오늘의 첫 장면이자 베스트컷.


자식한테서 받는 사랑고백은 남편에게 받는 사랑고백과는 또 다른 애틋함과 고마움이 있음을 알았다.



고백을 받으며 아이를 끌어안으니 

최근에 내가 나의 엄마에게 한 사랑고백이 떠올라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심장에 지병이 든 엄마는 최근 부정맥에 빈맥까지 생겨서 두 차례 응급실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전부터 의사는 조금이라도 나이가 이를 때 시술을 하시면 좋겠다고 권했지만 겁을 냈던 엄마는 약물과 운동으로만 케어해 왔다. 하지만 맥박이 솟구쳤다 다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하며 컨디션이 급격이 안 좋아지는 상황이 발생하니 시술에 대한 불안보다 엄마 자신의 상태에 대한 불안이 더 커졌고, 담담하게 시술을 받기로 결정하셨다. 그렇게 하라는 뜻이었을까, 엄마가 결정하자마자 다른 환자가 취소한 자리가 생겨 빠르게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응급실 이력 때문에 중환자실에 2박 3일 계셨고 난 하루 휴가를 내어 시술 당일 엄마를 만났다.


복잡할 것 없는 시술이라 걱정할 것 없다 했지만,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에너지 넘쳤던 엄마도 많이 늙고 약해졌다. 물도 마시지 못하는 금식 탓에 더 야윈 듯 보여 마음이 아팠다. 시술 대기 시간이 좀 길어져서 엄마 긴장 풀어주려고 한 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었다. 옛날 얘기, 요즘 얘기 두런두런. 그러는 내내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얼마나 표현 없는 딸이었던 걸까.


그러나 시술 들어가기 전, 엄마의 이마와 머리칼을 매만지며 끝내 고백했다.


"엄마 시술 잘 받고 이따가 봐요. 사랑해 엄마."


3~4시간 걸릴 수도 있다던 시술은 1시간 30분 만에 끝났고 엄마는 편안해 보였다. 열흘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맥박도 정상이고 컨디션이 좋아져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계신다. 엄마의 응급실행부터 시술 후 지금까지 빠르게 전개된 상황이 어쩌면 하늘의 뜻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이런 노래 가사가 왜 나왔을까. 그런데 아무리 잘한다 해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마음에 후회가 따라붙는 건 필연이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가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므로... 그러나 현실이든 꿈이든 가슴이 철렁한 순간에서야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잔잔하고 다정하게 자주, 상대의 소중함과 내 깊은 마음을 밝혀주면 좋겠다. 말은 메아리치니까 자꾸 말해서 서로에게 아로새겨지도록.



사진출처: 사진: Unsplash의 Gabby C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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