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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Nov 08. 2024

하동빈│내일을 꿈꿔도 될까


소년

하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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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 내어 말해줘 고맙다. 심성이 바르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많은 학교란다. 적응하기 어렵진 않을 거야. 필요하다면 언제든 선생님을 찾아오렴."


결국 오게 되었다. 학교도 동네도 모두 나에게는 처음인 곳이다. 갈 곳이 어딨냐며 절대 안 된다는 할머니를 수십 번 설득하고 회유한 결과였다. 나의 강한 의지 탓도 있었겠지만, 주인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 더는 그곳에 없게 되었다는 사실도 그곳을 떠나야 하는 좋은 구실이 되어 주었다. 그렇다고 이사를 가게 된 것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혹여라도 돌아올 엄마를 마주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과 기대를 버려야 했으니, 엄마와 나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그 집을 떠나야 했으니 말이다.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기에 우린 떠나는 길을 택했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친 우리의 그림자엔 아쉬움과 쓸쓸함이 어지간히도 묻어 있었다.


아직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할머니를 대신하여 이사 갈 곳을 알아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중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가 않았다. 몇 안 되는 아는 어른인 가정폭력상담소 소장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감사하게도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하고 전학 절차까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대화 끝 무렵에 전학과는 관계없는 질문을 던졌다.


"동빈이는 혹시 야구나 축구 같은 좋아하는 운동이 있니?"


 "...... 야구요. 야구 좋아해요."


"어머나, 정말? 너무 잘됐다. 우리 학교에 야구부가 있단다. 물론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지만 테스트를 보고서 언제든 합류 가능해. 기본기만 잘 갖추고 있다면 그리 어려운 테스트가 되지는 않을 거야."


나에게만 걸렸던 저주가 혹시 풀리기라도 한 걸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야구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학교에 야구부가 있다는 전혀 알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빅뉴스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손과 발끝에 찌릿찌릿 싫지만은 않은 전기가 오는 기분이다. 공을 던지고 싶었지만 나의 바람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기에 괴로웠고 슬펐던 과거의 나날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저 난 살고자 이곳으로 도망쳐 왔을 뿐인데, 그런 나에게 하늘에서 선물을 내려준 걸까. 내가 감히 내일을 꿈꿔도 된다는 신의 계시인 걸까.




주말 아침은 고요했다. 학교 가는 길을 익히고자 아침을 먹고 집 밖을 나섰다.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할머니와 헤어진 뒤부터는 혼자 걸었다. 어제 지났던 길인데도 영 어색하게 느껴진다. 내가 살던 동네와는 달리 이곳은 상당히도 고요했고 한적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논밭, 어디로 숨은 건지 보이지 않는 사람들, 뜨겁지 않게 내리쬐는 햇볕... 마치 나만 다른 세계로 뚝하고 떨어진 것만 같았다. 논밭 주변으로 세워진 작은 주택들은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그 모습은 꼭 추워서 서로를 감싸 안고 있는 듯 보였. 한 겨울에도 춥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고층 건물들이 없으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지 않아도 내 눈에 파란 하늘이 커다랗게 담겼다. 그런 와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빨간 고추잠자리였다. 오랜만의 만남에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넬 뻔했다. 내  마음이 들렸는지 무리들 중 한 마리가 비행 고도를 낮추더니 들꽃 위에 사뿐히 앉았다. 혹여 날아가 버릴까 조심스레, 하지만 재빠르게 날개를 잡았다. 잠자리를 들어 올려 눈앞으로 당긴 뒤 잠자리 눈을 마주한 순간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 진짜."


잠자리가 말을...... 말을 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우두커니 서서 잠자리를 계속 바라만 보았다. 아니, 도통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요즘 내가 예민해서 헛소리가 들린걸 테지.


"날 좀 내버려 두라고, 제발!"


잠자리로부터 시선을 뗀 순간 또다시 들려왔다. 잘못들은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고 크게 들려왔다. 한 자 한 자 제법 또렷한 목소리가 내 귓구멍을 빠르게 통과했다. 내 앞에 있는 건 분명 사람의 말을 하는 잠자리가 틀림없었다.


"으악!"


너무 놀란 나머지 잠자리를 휙 하고 던져버렸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잠자리는 휘리릭 날아가 버렸다. 무리들을 떼 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심장이 콩닥콩닥, 놀란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대체 뭘 본거지.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 사진 출처 : Pixabay, Rizwana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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