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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Nov 15. 2024

유하나│마음의 소리


소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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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집을 나섰기에 목적지는 없었다. 집과 학교만 오가던 내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일단 그냥 걸었다. 걷다 보면 어디든 닿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뜨겁지 않은 적당히 따사로운 햇볕과 살랑하며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따스한 온기는 마치 엄마의 품속 같았고, 내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의 부드러움은 마치 엄마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엄마를 떠올리니 또다시 가슴이 아려왔다. 자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같은 세상 아래 함께 호흡하며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 있었기에 괜찮았다. 하루 한 번은 엄마를 볼 수 있었고, 언제든 연락을 취할 수 있었으니. 그랬던 그때와는 다른 지금의 현실은 어디까지 나를 무너뜨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내 입은 열리지 않았고, 누구와도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난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지 않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죽더라도 죽지 않은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엄마를 잃은 나를 돌봐 줄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반갑고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내게 처음부터 없었던 아버지라는 사람의 존재는 달갑지가 않았다. 그런 그가 시간이 갈수록 나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침투해 들어오려고 한다. 내가 바라지 않았고 허락한 적이 없었기에 그런 노력과 행동이 정말이지 싫었다. 처음 나에게 건넸던 말처럼 보호자로 계속 쭉 지내줄 수는 없는 걸까. 별도로 부탁을 해야 하는 걸까.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고민들쯤은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갑작스레 차오르는 분노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앉아서 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이끌고 계속 걸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이곳 남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는 느티나무가 보였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나무 아래 놓인 기다란 벤치 위에 걸터앉았다.


'하...... 진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갈 곳은 없었다. 누구나에게 여럿 있다는 그 흔한 친척마저 없었기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외동딸이었던 엄마는 나 하나만을 낳고 금지옥엽 귀하게 키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3살이 되기도 전에 두 분 다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나는 결국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날 좀 내버려 두라고, 제발!'


알고 있다. 그게 현실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계속 이런 태도로 일관한다면 엄마와 나를 버렸던 그때처럼 아버지가 또 한 번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말을 못 하게 되더니 진짜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내 몸뚱이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무용지물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으악!"


커다란 비명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있었나 보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소리의 정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나무 기둥을 빙 둘러 벤치 반대편에 도착한 내 눈앞에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남자아이 한 명이 보였다. 엉덩방아를 찧어서 아팠는지 자신의 엉덩이 한쪽을 손바닥으로 문질거리고 있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위기의 상황에선 말도 못 하는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테니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도 들었어?"


처음 보는 남자아이였다. 마치 그저께도, 어제도 만나고 오늘 또 만난 친구처럼 인사도 없이 '너'라는 호칭을 붙여가며 그는 친근하게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아이를 바라봤다.


"잠자리 못 봤어? 잠자리가 말을 했다고!"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싶어 잠자리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러나 주변엔 그 어떤 생물도 보이지 않았다.


'얘는 대체 뭘 보라는 거야. 아무것도 없는데.'

"어...... 어? 설마 너야?"


뭐가 나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이 아이 앞에서 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가는 편이 낫겠다 싶어 손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뜨려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멀쩡한 것 같으니 먼저 가볼게.'


방향을 바꿔 돌아선 순간 남자아이는 내 오른쪽 손목을 잡고 나를 돌려세웠다. 내 몸이 휘리릭 돌아 남자아이의 얼굴을 다시 마주했다 .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 번 놀라고, 그 아이의 말에 두 번 놀라고야 만다.


"너, 대체 뭐야. 왜 네 마음이 들리는 건데!"




*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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