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는 일은 마법 같은 일
오늘 조카가 태어났다. 언니가 나보다 훨씬 늦은 결혼을 했기에, 드디어 내게 첫 조카가 생긴 날이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조카가 언니의 모습을 얼마나 닮았을지 궁금해져 갔다. 아이를 기다린다는 건, 크리스마스 전날의 설렘과 조금 닮은 듯하다. 어떤 선물이 내게 찾아올지 몰라, 그저 설레고 기다려지던 마음.
언니는 출산을 앞둔 하루 전, 출산의 두려움에 눈물을 보였다. 어쩌면 엄마가 된다는 것은, 여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 으레 당연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여자의 인생에서 우리는 당연히 엄마가 되는 삶을 생각하고 얘기하지만, 엄마가 되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과 위험을 감수하는지는 생각지 못하는 듯하다. 나 또한 내가 출산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마주할지, 육아의 과정에서 어떤 희생을 필요로 하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으니까.
나는 아이를 출산할 때, 아무것도 몰랐기에 무식해서 용감했다. 주변에 아직 출산한 친구들이 없었고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듣지 못했던 탓에, 아이를 낳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한 만큼 걱정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출산을 해보니, 엄마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임신 기간 동안에도 입덧 지옥으로 힘들었지만, 출산의 고통은 상상 초월이었다. 인생에서 이렇게 아픈 경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렸다.
언니 또한 출산 후 찾아온 수술 부위의 아픔에,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조카의 얼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가족들에게 전송을 해주었다.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 얼른 몸을 움직이고 싶다고 했다. 이런 게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신생아실로 향하는.
가끔 아이를 육아하며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면, 출산하던 날을 떠올리곤 한다. 나는 임신 중에 시댁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탓에 다른 엄마들처럼 태교를 잘해주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을때 제일 먼저 든 감정은,기쁨이 아니라 미안함이었다. 10달이란 시간동안 아이도 좁은 뱃속에서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그리고 미안한 만큼, 앞으로 아이에게 더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든 순간이 왜 없겠냐만은, 아이를 통해 얻는 기쁨으로 많은 어려움들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이혼을 결심 했을 때, 아이 없는 싱글의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만약 아이 없이 내가 이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조금은 홀가분하고 책임질 필요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내 인생에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춥고 외로운 인생일 것임이 분명하다. 신기하게도 아이를 낳고는, 예전처럼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아이가 주는 사랑이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보다 훨씬 커서, 아이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며 한쪽이 허전하게 비어버린 것만 같았던 내 마음 한편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부모님께서 주신 사랑으로도 느껴본 적 없는 충만함이다. 이건,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이 아이의 엄마로 살아갈, 충분한 값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 설령 무거운 책임으로 인생이 때때로 버겁게 느껴질지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임을, 안다.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지난 8년, 나는 평생 받지 못할 사랑을 받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아이가 8살이 된 지금,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아이가 자랐으면 하고 바란다. 아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다.
"엄마, 나는 OO이가 부러워."
"왜?"
"OO 이는 이제 태어나면 1살이잖아."
"어린 게 부러워?"
"응. 그럼 엄마랑 더 오래오래 있을 수 있잖아. 나도 엄마랑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어."
"맞아. 엄마도 그래. 근데 네가 크면 이만큼도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없을 걸."
"그래서 나는 천천히 크고 싶어. 아니 오히려 어려지고 싶어."
아이도 엄마랑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엄마와 더 많이 눈 맞추고 웃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니.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엄마가 되는 일은 마법 같은 일. 언니에게 꽃 같은 아이가 태어나, 엄마로 살아갈 행복을 얻게 되어 기쁜 오늘이야. 조카와 언니가 서로에게 큰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될 수 있기를. 누구보다 따뜻한 엄마가 될 자질이 충분한 언니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어. 그리고 사랑하는 내 조카가,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기를."
오늘도 사랑할 수 있음에 행복한 하루.
아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
비록 힘든 길 위에 있지만, 웃음을 잃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는 날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오늘은, 사랑하는 조카를 만난 선물 같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