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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고양이의 마지막 꿈 (4)

by Iris K HYUN




너 비둘기 아니야?



거품 차 옆을 지나는 건 매나 독수리나 뭐 그런 종류의 생명체가 아니다. 익숙한 생김새가 빙글빙글 날면서 공기 기둥 속에 머문다.


의외다 너?


비둘기의 등장에 거품 차가 땅에 별안간 추락한 건 아닌지 밖을 둘러봤다. 날고 있는 느낌이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원 바닥을 구르며 낙엽을 열심히 쓸고 있는지도.



나 지금 온난 상승기류를 타는 중이야.



비둘기는 여유로운 표정이다. 심지어 날개를 많이 퍼덕이지도 않는다. 한술 더 떠서 또 다른 비둘기는 조그마한 백문조 새끼를 머리에 얹고 간다.



응 수고가 많네. 백문조까지 챙겨가고.



비둘기에게 격려의 눈빛을 보냈다. 우리는 함께 구름을 지난다.



나도 구름 같아. 존재하는데 존재하는 것도 아닌 거.



갑자기 내가 여자인지 고양이인지 나랑 같이 있던 남자인지 헷갈린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쓸 줄 안다고 크게 대답해서 날 여기 태워준 거 같은데 대체 뭘 써야 하나. 그게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눈부시게 푸른 바다를 몇 차례 오르내리니 커다란 얼음 기둥이 여기저기 솟은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품 차는 고도를 한껏 낮췄다. 묘기를 부리듯 눈 앞의 얼음 기둥 사이를 지난다. 기둥에 냅다 박치기 하는 수준으로 다가가는데 희한하게 거길 통과하는 거다. 운전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가 차를 모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나도 뭘 하긴 해야 할 건데. 이 멋진 차를 타고 가는 보답을 하고 싶은데.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한석봉의 어머니가 하는 대사처럼 거품 차의 공기가 내게 그런 향을 풍겼다. 신난다고 소리만 지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품 차가 또 한 번 고도를 낮췄다. 가슴이 서늘할 정도였다. 이번엔 나무들이 줄지어 선 거대한 숲 속이다. 그걸 자세히 좀 보겠다는 의지를 가지자마자 순식간에 그중 하나의 공간으로 다가갔다. 거품 차는 마음을 읽는 기능까지 있는 것인지. 숲 속의 습기와 나무 향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잘 들어 보라고. 지금부터 내가 본 걸 이야기할 테니.



사람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어. 나무 기둥마다 한 사람씩,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의 사람들이 땅을 향해 팔과 머리를 축 내려뜨린 채로. 발목에 굵은 밧줄이 단단히 감겨 있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모양이야. 묶인 다리 말고는 나머지 사지는 제멋대로 축 늘어져 있어.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같은 그 대열이 멀리서 보면 거대한 숲 같기도 해.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남녀노소 가지각색인데 시야를 더 넓히니 그 같은 꼴이 끝도 없는 행렬로 펼쳐져.



거품차가 열렸고 나는 밖으로 나왔어. 거품 차는 어디서 기다리겠다, 뭘 보고 돌아와라 뭐 이런 지시도 없이 자취를 감췄고.



사람들을 매단 나무 아래에는 저마다 글씨가 적혀있어. 언어의 종류가 다 달라도 하나의 소리처럼 울려서 난 그 뜻을 알겠더라고. 멀지 않은 시야에 막 태어난 어린아이가 붓의 형태라고 보기도 우스울 정도의 머리카락 몇 가닥으로 땅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어. 바람에 몸이 흔들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아이는 본인의 머리카락이 그리는 그 글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해. 희한한 건 뒤집혀 매달려 있는데도 아이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지 얼굴의 형태도 표정도 모두 평온해 보였어. 성인들은 사정이 달랐지. 얼굴과 몸의 살들이 아래로 온통 쏠려 보기에도 꼴사나운 건 둘째치고 표정이 너무도 고통스러운 거야. 그들의 머리카락은 저마다 땅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사이로 물이 지나가는 건지, 계속 끊임없이 지나가는 것들이 있었고. 궁금한 나는 땅바닥에 쓰인 글자를 하나씩 읽어보기 시작했어.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 모든 사진은 제가 어디선가 찍었던 것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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