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지?
내 앞에 거울 같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면
나는 누구지
어떤 끄달림일지
인연일지 모를
그 사람들이
다 사라지면
나는 누구지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 때
더 이상 그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은
나는 누군가
그 끝도 없는 반복이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할 때
나는 누군가
얼마 전 깜깜한 길을 걷다가
산티아고 길이 떠올랐다.
새벽에 일행 없이 나와서
어둠 속에 서 있는지도 모르게 서 있던 느낌
손에 쥔 스틱으로 내 다리를 건드리고 놀라서 소리를 질러댔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나
동물이라도 튀어나올까 두려웠나
낯선 사람이 나를 해칠까 봐 두려웠나
어릴 때
엄마가 사주신 위인전 시리즈를 뒤적거리면서
난 헬렌켈러의 삶이
제일 두렵고도 존경스러웠다.
나를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사라졌을 때
나는 무엇으로 세상을 인식할 수 있을까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나
머리를 드니
달이 밝고
수도 없이 박힌 점들이 깜빡인다.
거리가 다 다른 별들이
같은 시간처럼 보인다.
나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경계가 저와 같다면
나는 누구지
차라리 동물이라도 튀어나오면 덜 무섭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