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저씨’에서 악당이 주인공을 향해 누구냐고 묻자, 원빈 왈 “옆집 아저씨”라고 응수한다.
와! 그 간지. 그때만 해도 아저씨란 건 멋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를 꼽자면, 백수에 이혼까지 당한 중년이 “아저씨 마을을 만들겠다”는 웅얼거림이었다.
그렇다. 아저씨란 건 원빈처럼 멋진 게 아니지. 현실은 비루하고 째째하고, 뭔가 힘들고 좀 그러니까. 그럼에도 '나의 아저씨'도 멋지긴 했지.
요즘 아저씨가 돼 버린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마흔 중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우선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배도 나왔다. 의욕도 없었다. 사는 게 재미가 없으니까 퇴근 후 다른 아저씨들과 두런두런 떠들면서 맥주에 소주를 타 마시는 게 낙이었다. 그러다 노래방에서 옛날 노래를 부르다 돌아가는 매일이 계속되었다.
그러니 몸이 남아 날리 없었다. 한 밤 중에 배가 아파 응급실에 실려 가길 몇 번. 위에는 헬리코박터균이 있었다. 이 주 넘게 제균제를 먹고도 배는 계속 아팠다.
다시 고용량 우루사를 한 달 넘게 먹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밤, 다시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담낭염이었다. 입원한 병원에서 CT 촬영 후 의사는 지방간이 있다고 했다.
“환자분, 간이 기름으로 번질번질합니다.”
‘그깟 지방간 다들 하나씩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알아차린 건지 의사가 섬뜩한 말을 했다.
“순대 시키면 나오는 간 있잖아요, 돼지 간. 퍽퍽하죠? 그게 정상인데, 기름이 번들번들하면 그게 얼마나 이상해요. 지금 환자분 간이 그렇다니까요. 알아듣겠어요?”
처방전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사정인지 아저씨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명이 다른 이를 위로해주고 있는 모양새였는데 대화가 가관이었다.
“사는 재미가 뭐 있어. 삼겹살에 소맥 말아먹는 것 말고 또 있어? 그것도 하지 말라면 이제 무슨 재미로 살라는 건지.”
“야, 너도 운동해, 운동. 산을 타든지 볼을 치던지.”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어, 주말이면 애들 학원 나르고 다녀오면 금방 월요일인데.”
그들의 대화가 절절하게 공감될 줄이야. 어쨌든 나는 의사의 말에 겁을 덜컥 집어먹었다. 그날부로 담배를 끊었다. 술도 끊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재미로 살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른 가까이 술은 입에도 댈 줄 몰랐던 내가 불과 십여 년 만에 이처럼 술에, 담배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술과 담배에 오염되기 전의 시간들은 그렇게 따분했었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젊었고, 지금은 늙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없겠으나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는 동안 나는 건강해지고 싶어졌다. 이제는 정말 ‘해장’을 해야 할 때였다. 라면을 먹지 않고 하는 해장을 말이다. 무작정 홈트레이닝과 달리기를 시작했다. 운동에는 돈들이는 것 아니라며 혼자 운동을 하다 여러 번 발목, 무릎, 어깨에 부상을 입기도 여러 번.
어쨌든 해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