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Jan 24. 2024

불혹의 해장일지, 5분간 죽다, 살다

1.

홍대입구역에 있는 만화카페는 냄새부터 달랐다. 어림잡아 적게는 띠동갑에서 많게는 스무 살 넘게 어린 청년들이 누워서 만화를 보고 있었다. 도통 카페인지 만화방인지.   


이전에 알던 만화방은 이렇지 않았다. 만화책 표지부터 달랐다. 집어들면 느껴지는 그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감촉! 여기저기에 담배구멍이 나있는 싸구려 소파에, 언제부터 썼는지 상상도 안 되는 방석을 베개 삶아 자고 있는 아저씨는 옆에서 다른 이가 쉴 새 없이 담배를 피거나 말거나 코를 골아 댔다. 


환기도 안 되는 지하에서 담배, 라면, 쥐포 굽는 냄새와 연기가 뒤섞어 코를 찌르고, 천장 벽지는 누렇게 바래있는데 항상 곰팡이가 있었다. 그게 기억하는 만화방의 풍경이었다.  


술 마시는 것 말고 다른 취미를 가져보겠다며 시작한 계획이 바로 해장일지였다. 처음 도전한 게 요즘 아이들이 간다는 만화카페였던 것이다. 어쨌든 ‘리얼’을 몇 권 챙겨 구석에 자리를 폈다. 오징어땅콩도 한 봉지. 


삼십분도 안 되어 눈은 뻑뻑하고 만화책 글씨가 자꾸만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비비다 말다, 거북목도 뻐근하니 목을 주물렀지만 몸은 계속 쑤셨다. 아직 3시. 그래 5시에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두 시간 더 남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깊이 잠들어 버렸다.      


2. 

잠시 기절을 했던 게 분명했다. 일순간 공중에 뜬 몸은 곧 빠르게 추락했다. 낙하산을 잡아당기자 몸이 세차게 떨리며 하강하는 속도가 줄었다. 바람이 너무 셌던 걸까. 몸은 다시 지면을 향해 다시 추락했다. 낙하산 줄이 엉킨 걸까. 완전히 펴지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제길, 어떡하지. 그 비행기를 타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몸은 빠르게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반대로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1초와 2초. 그 사이의 간격은 다시 한없이 나뉘었다. 저 아래 보이는 아파트 숲을 지나 어딘가, 그 아래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지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크게 흔들리더니 사방은 조용해졌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3. 

늦여름. 그 날은 바람이 세게 불었다. 온통 잿빛 구름이어서 하늘색이 처음부터 회색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살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평상이 있었는데, 거기 누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잠깐씩 철커덩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지하철 소리를 듣다가 잠들 기도 했다. 


그날 회색 구름 사이로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 하얀 비닐봉지 같은 게 날아가고 있었다.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엄마의 손이 이마를 덮자 눈을 떴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비닐봉지를 잡고 하늘을 날고 있었어. 


“얘가 잠꼬대하는 것 좀 봐!”      


4.  

죽었나. 죽었지? 잠깐만 움직이는 것 같은데? 몰라 네가 알아서 해. 나보고 어쩌라고. 버리자. 안보이는 곳에. 이른 새벽. 인적이 드문 공사판에 그림자 둘이 어른거렸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그림자는 빈 손이었다. 


살아있었어. 어차피 죽을 거였어. 이래도 되는 거야? 일단 여기서 나가자. 그림자 둘은 이내 숲으로 사라졌다. 

공사장 계단 옆, 시멘트 포대가 아무렇게나 쌓여있어 먼지가 날리는 바닥에 라면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서 개 한마리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박스를 갉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쥐 한 마리가 머리를 빼꼼히 내밀었다. 


으르릉. 개는 힘을 쥐어짜보았지만 배고픈 쥐떼에게 위협은 되지 못했다. 녀석들은 더 힘이 빠지길 기다릴 것이다. 멀리 숲이 내뿜는 공기가 콧속에 들어오자 개는 다시 눈을 뜨려고 낑낑댔다. 


2년간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다. 자주 얻어맞았고 대개 굶주렸다. 쓰레기 더미에서 몸을 웅크리고 별을 볼 때나 이웃집의 개 짖는 소리에 덩달아 함께 짖기도 했다. 


쥐떼가 물어뜯는 동안 점점 조용한 어둠 속으로 한발 씩 걸어갔다. 네발은 두발로 다시 네발로, 시간의 멈춘 공간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날았다. 이윽고 개의 눈에서는 생기가 완전히 빠져나갔다. 완전한 어둠 속으로.  


“이게 뭐야! 누가 죽은 개새끼를 갖다 버렸어!”     


5. 

“으악!”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쳐다봤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어디에 있었던 거지? 삼삼오오 만화책을 읽던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관심을 잃었다. 


시계는 3시 5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전 03화 불혹의 해장일지, 라면없는 해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