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데 우주적인
영화 <소나티네>(키타노 다케시·1993)는 야쿠자 영화인 것 같은데, 다시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많은 경우 일본 영화 속 야쿠자의 세계는 대개 살과 피가 튀는 비정한 폭력의 아수라로 그려진다. 하지만 <소나티네>는 폭력의 외투를 입어도 그 안의 죽음은 고독해 보였다.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의 근원적인 고독이 느껴졌달까.
작 중 기타노 다케시가 분한 야쿠자 ‘무라카와’에게 사람 목숨을 빼앗는 것이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영화 초반 돈을 내놓지 않는 술집 주인을 바다에 빠트린 뒤 “3분이 지난 게 아니냐”고 부하에게 묻는 무라카와의 표정에는 어떠한 동요도 없다.
정적을 피해 떠나온 오키나와의 해변에서 무라카와와 부하들은 어린애 마냥 뛰어논다. 이전까지 볼 수 없던 무라카와의 미소는 천진난만해 보일 정도다. 살과 피가 튀는 비정한 세계에 속한 인물의 동심이 오키나와의 이국적인 자연 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드는 모습이, 하지만 나는 조금 기묘하게 느껴졌다. 영화 속 도쿄는 폭력으로 점철된 어른의 세계를, 오키나와는 동심에의 환원으로 묘사된다.
영화 속의 대결은 그 흔한 재주넘기 한번 없이 꼿꼿하게 마주선 채 총을 쏘아대는 것으로 그려진다. 곁의 누군가는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도 산자는 제 자리에 선채 방아쇠를 당길 뿐이다.
그리고 무라카와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갈 곳이 있음에도, 그를 기다리는 여인도 있었지만, 피로 물든 손을 씻겨줄 바다를 앞두고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의 비애, 비가는 곧 죽음에 다르지 않다는 감독의 스산하지만 서글픈 메시지다. 자연히 다그 함마슐트(Dag Hammarskjold, 1953.4∼1961.9)의 말을 떠올릴 수 밖에.
“죽음을 찾지 말라. 죽음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완성으로 만드는 길을 찾아라.”
한참도 더 된 드라마 <하얀거탑> 속 죽음이란 또 어떠한가. 소아암 말기 환자의 치료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치의에게 스승의 조언이란 다정하지만 냉정했다.
“명백히 죽음의 징후를 보이는 환자에게 과도한 시술을 하는 건 환자가 안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어. 삶의 마지막을 보내기에 병원은 적당한 장소가 아니지. 진주라는 저 꼬마에게 진통제보다는 아이스크림 하나가 더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생의 희망이 완전히 끊어지자, 주치의는 마술사가 되고 싶다던 환자를 위해 마술쇼를 보여준다. 환자는 결국 죽는다.
사람은 죽는다. 죽음에 대한 여러 해석과 상관없이 나는 유년시절부터 줄곧 죽음이 무서웠다. 또 남겨진 자에게 부여되는 역할과 의무같은 것들이 싫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선택을 할 때 죽음이 연상되는 가혹한 상황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으려 하거나 지나치게 홀로 감당하려는 선택을 하곤 했다.
한 때는 망자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이야말로 산자의 투쟁이라 믿었던 적도 있었다. 영화 속 무라카와와 그 정적들은 오로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총구를 들이댔지만, 망자를 대신해 한뼘만큼 더 세상을 향한 방아쇠를 당길 의무가 있다고 말이다. 기자가 되고 난 이후에는 저널리즘이 그 방아쇠라고 여겼다.
어쨌거나 죽음을 대하는 복잡한 마음의 밑바닥에는 모친의 죽음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모친은 병석에서 운명하였는데, 분쟁 지역에서 때로는 감염병 상황에서 숱한 이의 죽음을 지켜본 바 있는 내 관점에서 모친의 죽음은 비극적이지만 평범한 축에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모친의 사망 이후 어머니나 엄마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거의 없었다. 가족의 상실을 다룬 상황과 영화 등을 봐도 이상하리만치 무감각했다. 가까운 정신과 전문의는 내게 유년시절 모친의 부재가 정서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어머니의 죽음이 유년시절의 소년에게 어떤 의미였겠는가. 나는 너무 뻔하고 게으른 분석이 아니냐며 무시해버리곤 했다.
모친의 죽음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졌다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후 나는 모친을 제대로 떠나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친, 아니 엄마도 한 때는 소녀였다. 그리고 나를 낳았다. 중년이 된 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엄마를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리워했었다. 그걸 나만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