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면서도 한번 해보지 않은 과외비와 학원비에 나의 월급이 거의 소비되었다.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던 미드와 영드를 시간 날 때마다 보고 스크립트해 가며 외우고 팟캐스트와 영어 신문을 40분 거리의 영어학원을 왕복할 때마다 버스 안에서 듣고 읽었다. 그러나 영어는 쉽사리 늘지 않았고 써먹을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다가 ‘어학연수를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혼자 있는 불안함보다 자유로웠다.
항상 끼고자던 귀마개에서 홀가분해지지는 못했지만, 매일 아침 엄마와 동생의 다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내가 스스로 일어나 눈치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되어 행복했고, 아르바이트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었던 환경도,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여행 다니는 것도, 나의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 선명하게 잘 보이던 날들이 마음이 아프면서도 다듬어야 할 부분이라 믿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행복했다.
이기적으로 느껴지던 나만을 생각하기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해라.”는 남자 친구의 말은 이해함에도 귀찮고 싫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였다.
그해의 마지막도, 엄마의 생일도 필리핀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남자 친구가 대신했다고 전해 들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 케이크와 용돈을 들고 엄마를 찾아갔고 엄마의 지인과 같이 소고깃집에서 외식하며 밥도 먹었댔다. 그리고 남자 친구로부터 엄마 생일 잘 챙겨 드렸다며 엄마의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나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엄마에게 사위 같은 남자 친구가 되었다.
노력으로 되는 게 사랑일까? 사랑은 노력으로 되지 않지만, 그 사랑을 유지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내가 없는데도 그런 생각을 했냐 물었다. 그는 “그렇게 너를 공략한 거지.”라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사랑을 하게 되니 서로의 발전을 보게 된다고 했다. 더 나은 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했다. 나를 보며 가족에 대한 감정을 바꿔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내 부족한 부분과 생각 못한 부분을 고민해 볼 수 있도록 짚어준다. ‘우리는 반푼이 부부’라 칭하며 이렇게 한푼이가 되어간다고 말한다.
그렇게 나를, 우리의 내면을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