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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희숙 Oct 25. 2024

갈 곳 없어 머무는 자리

 호주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고 남자 친구가 나를 공항으로 픽업 왔다. 그러고는 본가로 엄마한테 인사는 해야지 않냐고 인사하러 갔다. 다음 날이 남자 친구의 명의로 처음 시작하게 된 체육관의 개업식이었다.


 엄마는 잠들어있었고 우리를 보며 왔냐, 밥은 먹었냐의 정도가 인사의 전부였다. 그러고는 챙길 짐이랄 것도 없는 몇 가지 옷들과 호주에서의 짐 그대로 들고 나왔다.

다음 날 체육관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으니 돈 좀 빌려달라 전화했고 말없이 2,000만 원을 보내 주셨다.


 그렇게 살림살이가 차려졌다. 원룸 방을 남동생과 보러 와서도 별말 없으셨다. 엄마를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순식간에 휩쓸려 생각할 틈도 없이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던 나는 무엇이 더 나은 방법인지, 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 현실에 막혀 순간의 선택에 더 나은 방법을 찾았다. 그저 나락으로 빠졌다는 기분만 들었다.


 상하이는 물 건너간 상황에서 본가에 살지, 진해에 살지를 선택해야 했다. 돈이 없으니, 체육관에서 지낼지 원룸에서 지낼지를 선택해야 했고, 이미 빚은 졌으니 최대한 빚을 빨리 갚을 방법을 선택해야 했고 직장을 가질 수 없으니, 사범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몇 번을 도망쳐 나올까, 고민하다가도 동거를 먼저 했던 나는 남의 시선이 두려워 머물기를 선택했다. 갈 곳이 없었다.

남편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난과 돈의 굴레에 벗어나 나의 능력껏 벌면서 생활하고 그런 삶에 성취감 혹은 만족감을 느끼며 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왜 내 삶에선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하는 자괴감과 무력감에 사는 게 싫어졌다.


 누구 탓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내 탓이라 하기엔 내가 너무 불쌍했다. 엄마 탓이라기엔 내가 선택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모든 상황이 남자 친구 탓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듯했다.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 시간과 내가 너무 애처로웠다.

그렇게 익숙해지는 무기력과 허망함 속에서 아둔하게 미련을 부리며 나는 나의 사람들로부터 숨어 지내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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