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이다. 1학년 아빠가 돌아가시고 몇 달 지난듯하다.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가 있었고 글을 지어 냈다. 주제가 가족이었는지 아버지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 국어 선생님께서 수업 후 나를 복도로 불러내셨다. 어깨를 감싸 안으시며 고개를 낮추시어 말씀하셨다. 아쉽게도 3 등 안에는 들지 못했고 선생님은 나의 글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셨다. ‘엄마는 엄마를 닮은 동생을 아빠는 아빠를 더 닮은 나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나를 더 이뻐하는 아빠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엄마의 작은 눈빛 하나에도 움츠러들 때였다.
게다가 사춘기였을 때이니 주변에 친했던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나 혼자 방황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온 후로 나는 더 입을 닫았다. 차라리 몇몇 나와 잘 몰랐던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게 더욱 편했다.
내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중학교에서 몇 안 가는 예술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서야 조금씩 나아졌지만, 그것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전달한다며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동시에 다시 많은 친구와 친해지는 것을 포기했다. “너 아빠 돌아가셨어?”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질문에 이어 미안해하는 친구 앞에서 “괜찮다” 말했지만 울지 못해 웃었던 것 같다.
엄마를 종종 심하게 때리기도 했던 엄마에겐 그다지 좋지 못했던 아빠였지만 우리에겐, 특히 나에겐 잘해주셨던 아빠였기 때문에 성장기에 쓴 일기나 시의 대상은 모두 아빠였다.
사랑을 이야 기할 때도 상실, 기다림, 그리움의 대상은 모두 아빠였다.
책을 내기로 결심하고 글을 쓰고 있다가 정확한 날짜와 사건이나 사고 기억이 나지 않아 엄마한테 전화했다. 왜 그런 걸 물어보냐 하셨다.
“엄마, 나 글 써. 쓰다가 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하거나 글 쓰는 걸 즐겨한다는 건주변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뜬금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아픔과 가족사를 드러내며 글 쓰는 것이 어느 정도는 불편하신가 보다. 하기야 예전 나였다면, 아니 지금도 나의 이런 부족하고 아픈 시간을 굳이 내 입 밖으로 꺼내거나 써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엄마도 그렇지 않을까.
자전적인 글과 시를 쓰며 살고 싶다는 소망은 내가 글짓기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던 중학생 때부터였지만 글을 쓰는 시기는 어느 정도 나의 경험과 아픔이 승화되고 덤덤해져 성숙한 자세로 인생을 낙관하며 아무렇지 않을 때일 거라고 여겼다.
입으로 감정을 감정적이지 않게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아는 남편은, 내면에 상처받은 아이를 보듬어 주지 못한 마음에 내가 더 쉽게 상처받고 아플 수 있다고 ‘감정은 감정 그대로 말해야 한다’며 언제나 말하길 기다려주고 격려한다. 그리하여 좋은 기회에 글을 쓰며 내면 아이와 마주할 시기가 앞당겨졌다.
사람은 언제나 흔들리고 흔들리니 인생이고 인생이 그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 시기가 언제이든 나는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픔은 승화나 덤덤해지지 않는다. 그 상처받았던 시간을 생각하면 아프다. 다만 아팠던 것을 아팠던 것으로 인정하는 자체로 성숙한 자세지 않을까 그렇게 지금은 생각한다.
나의 슬픔은 나의 슬픔대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엄마는 엄마의 시간을 아프게 감당하며 견뎌오셨다. 각자에게 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 좀 봐달라고 내가 더 아프다고 악쓰지 않고 악착스럽지 않게 조금은 놓아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눈감아 줄 수 있나 보다. 이렇게 다들 자신의 시간을 걷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