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내 결혼식에서 눈물을 참았을까

실버라이닝

by 실버라이닝

2008년 4월, 나는 고등학교 친구와 결혼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먼저 좋아해서 계속 신호를 보냈지만 남편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당시 늘 성경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열혈 기독교 청년이었다. 나는 교회 사모님을 할 만큼의 신앙심도 희생정신도 없으니 일찍 마음을 접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대학에 가고 우연히 만난 그는 술 한잔 하자며 교회와 담을 쌓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나간 유행어들로 치자면 '썸'을 탔던 그 시기에 우리는 같이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 계단에 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어느 취한 밤 첫 키스를 했다. 결혼 16년 차 결혼기념일에 첫 키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둘 다 날짜는커녕 장소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이 한참 기억을 더듬어 장소를 생각해 냈는데 어느 커피숍이었던 걸로 합의를 보았다.



결혼은 준비도 예식도 간결 명료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예산도 빠듯해 많은 걸 생략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결혼앨범은 꼭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왜 어른들이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르고 한 달쯤 지나니 결혼 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왔던 분들을 떠올리며 한 장씩 넘겨 보다가 그제야 엄마와 동생의 표정을 확인하게 되었다.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엄마와 평소답지 않은 어색한 표정의 동생 모습이 그제야 눈에 보였다. 엄마는 상견례 때부터 아빠 없이 치르는 결혼식을 무척 속상해했다. 결혼식 당일에도 이모부가 아빠의 자리를 대신 채워주셨지만 계속 아빠 생각이 나신 듯했다. 더 말해 무엇할까. 지난 시간 동안 내 기억엔 없지만 엄마의 기억에 남아 있을 딸에 대한 추억과 수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나는 결혼식 일주일 전부터 울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세뇌시켰다. 결혼식 날 너무 울면 청승맞아 보일 것 같고 왠지 내 삶이 더 고되 보일 것 같아서였다. 울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결혼식 당일에 엄마와 동생과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보나 마나 눈물샘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혹시라도 함께 있는 자리가 생기면 시시한 농담으로 시간을 때웠다.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건조하고 사무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힘든 집안일을 처리할 때 늘 그래왔던 것처럼.



동생은 나보다 4살 어리지만 언제나 나보다 씩씩하고 야무졌다. 내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감정에 치우치려하면 동생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중심을 잡아주었다.



동생은 한 여름, 홍대 근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날도 참 의젓하고 차분했다. 눈물을 참으려고 더 밝게 웃고 다소 흥분했던 나에 비해 감정 컨트롤을 잘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나의 짐작일 뿐, 그날 동생의 마음은 어땠을지 결국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동생은 그날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처럼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을까? 나같은 마음으로 더 건조하게 행동했을까? 엄마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색해서 타이밍을 놓쳤을까?



'말 안 해도 알아주겠지' 하며 사랑에 대해 말로 표현 안 해도 된다던 나의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뻔뻔하게도 동생의 결혼식 내내 동생이 나에게 '언니 그동안 고마웠어' 라고 말 한마디 해주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동생이 행복하게 결혼하는 모습에 기특하고 감사했다. 아빠가 아프고 돌아가시기까지 힘들었던 긴 세월을 나보다 더 어린 시절에 겪은 아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동생에게 먼저 말을 해줄 걸 그랬다. '언제 이렇게 커서 결혼을 하니, 너무 기특하고 고맙다' 하고 말이다. 물론 짐을 들어주고, 힘들 것 같은 일을 먼저 처리해 주는 것도 고마움의 표현이고 사랑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하지만 거기에 말 한마디가 함께 할 때 비로소 모든 마음이 확실하게 전해진다는 걸 나와 동생의 결혼식을 모두 겪고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깨달았을 때, 그때라도 늦었지만 동생에게 말했어야 했다.



항상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어 고맙다고.

언제나 당연하게 내 곁에서 귀찮게 얼쩡거려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그래달라고.



동생의 결혼식 도중에 소나기가 내렸다. 어른들은 결혼식 날 비가 오면 잘 산다며 우리 식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동생은 결국 결혼 후 3년 뒤, 비 오는 어느 여름 우리 곁을 떠났다.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가족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표현했다. 아니 표현하지 않았으니 그저 무뚝뚝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핑계는 '말 안 해도 내 마음 다 알아주겠지' 하는 무책임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가족은 항상 붙어 있어 상처도 많이 주고받기 때문에 더 자주 사랑을 확인해주어야 한다. 조금씩 갈라지는 마음에 한 번씩 연고를 발라주어야 한다. 뒤늦게 앨범을 보며 죽은 사람에게 혼잣말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보고싶다고 말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저 공중으로 흩어져 다른 소음에 묻힐 뿐이다.



동생이 죽고 지인의 결혼식에 갈 때마다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친정엄마를 보고 우는 신부와 딸을 안아주며 함께 우는 엄마의 모습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곁에 있는 형제 자매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울다 웃다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서로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눈물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이던가. 왜 나는 그러지 못했는지. 도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았는지. 동생이 떠난 후 아직 내 결혼앨범과 동생의 결혼앨범을 한 번도 펴지 못했다. 그때의 미안함을 아지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누군가 결혼식 때 울지 않으려고 눈물을 참는다고 하면 굳이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 울다가 웃어서 미친년 소리를 듣더라도 미안함의 눈물을 미소에 가득 담아 서로에게 흘려보내라고 하고 싶다. 다만 꼭 말로 마음을 함께 전하라고 하고 싶다.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사랑하면 꼭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를. 글로 쓰지 못한 마음보다 말로 전하지 못한 마음이 이렇게나 두고두고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저승에도 맥주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