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돌리 바겐스토어 (5)

by Angela 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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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구경해 봐요. 재미있는 있는 게 많거든요. 아, 미안, 잠깐만요. 전화 좀 받을게요, 먼저 보고 있어요. 하이, 로이스?”


‘로이스? 비비디바비디부 이발사님?’


“나? 응, 저녁에 별일 없어. 아무 때나 와도 돼. ... 정말? 진짜? 와우! 오 마이 갓... 나 울 것 같아. 그럼, 그럼... 시간이 무슨 상관이야. 새벽 세시 반에 온대도 버선발로 마중 나가야지! 그렇지 않아도 어제 윌리가 또 전화했거든. 사실 내가 그동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아니야, 아니야.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 거지. 우리가 직거래를 왜 금지하는데, 꿈을 맡긴 사람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팔아 달라는 압박을 받지 않고 충분히 고민할 수 있게 하려는 거잖아. 당신은 오래 걸린 축에도 못 껴. 죽을 때까지 계속 고민만 하는 사람이 한 둘이야?


근데... 궁금하긴 하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거야? 그동안 점점 판매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잖아. 지난주에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만 해도 거의 정리하는 쪽 아니었어? 응... 그래? 오... 대단한 사람이네. 와... 도대체 어떤 사람이 길래 그렇게 인사이트가 대단한 거야? 우와... 대박이다. 그래, 그래 일 끝나면 바로 와서 자세한 얘기 좀 해줘. 응, 그래, 그래. 아이참, 아무 때나 오라니까. 늦어도 돼. 응, 그래, 이따 봐!”


자기도 모르게 귀를 쫑긋하고 있던 지은에게 상기된 얼굴의 다가왔다.


“미안, 미안, 좀 보고 있었어요?”


“아... 네.. 엄청 반가운 전화였나 봐요.”


“맞아요. 오랜 친군데요. 꽤 오랫동안 맡겨 놓고 있던 꿈을 오늘 밤에 찾아가겠다고 연락이 와서요. 꿈이 다른 분에게 가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 친구는 워낙 그 꿈을 좋아했거든요. 꿈에 대한 결정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이 절대 개입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말은 못 했지만 내심 이 친구가 꿈을 도로 찾아가길 바랐거든요. 계속 와서 들여다보는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럼 그 꿈에 애정이 많으시다는 건데 왜 오랫동안 안 찾아가셨어요? 꿈은 깨지기 전보다 더 좋아졌을 텐데요. 루이 암스트롱... 아니, 미스터 글로리아 노스트럼이 업그레이드... 아니 업사이클링을 하셨으니까.”


“꿈이 더 좋아지는 것과 그걸 이루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사실 한 번 깨진 꿈이니까 또 깨뜨릴까 봐 겁이 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게다가 더 좋아지기까지 했으니, 과연 내가 이 꿈을 이룰 그릇인가 싶기도 하다고들 그러시더라고요.”


“아... 그렇겠네요.”


“그래서 이 친구도 종종 꿈을 보러 왔지만 막상 가지고 갈 엄두를 못 냈거든요. 안타깝더라고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그 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그 친구거든요.”


“어떤 꿈인데요?”


“한 번 볼래요?”


“네!”


폴리는 지은을 맞은편 진열장으로 데려갔다.


“워낙... 뭐랄까 은은해서... 눈에 잘 띄지는 않아요. 근데 천천히 향을 맡아보시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꿈이에요.”


폴리는 진열장 구석에 놓인 작은 아이보리색 선물 상자를 꺼냈다. 작은 리본이 수줍게 달려 있는 상자는 폴리의 말대로 굳이 어느 쪽이냐 하면 수수한 편이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구석은 없었다.


“한 번 열어 보세요.”


폴리의 제안에 지은은 조심스럽게 상자 뚜껑을 열었다. 은은하게 달콤한 초콜릿 향이 지은을 감쌌다. 상자 안에는 하나하나 다른 색깔로 포장된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문득 페이퍼 문에서 엘피를 잔뜩 꺼내 늘어놓고 DJ 놀이를 하던 추억이 머릿속을 살짝 스쳤다.


“초콜릿 향이 너무 좋죠? 은은하게 달콤하고 먹을 때마다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초콜릿이에요. 근데 미안하지만 먹어보라고 할 수가 없네요. 꿈 주인이 이 모양 그대로 가져가야 하거든요.”


“아, 괜찮아요. 향만으로 너무 좋은데요.”


“그동안 우리 시에서는 초콜릿을 자체 생산하지 않았거든요. 바로 옆 도시에 초콜릿 산업 단지가 있어서 온갖 종류의 초콜릿이 연구·개발되는 데다가 전자동화 시스템으로 최저 비용으로 생산되는 초콜릿을 인근 도시들로 공급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다른 도시에서는 초콜릿을 생산할 꿈도 못 꾸죠. 초콜릿 공장은 허가가 안 나요.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그쪽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했었는데요... 잘 안 됐어요.”


“유학을 못 갔어요?”


“이발소를 하시는 아버지 반대가 심하기도 했는데, 그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어요. 아버지 몰래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아 그쪽 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일 년 만에 그만두고 돌아왔어요.”


“왜 그만두셨대요?”


“버티기 힘들었던 이유가 두 가지 있었대요. 우선 이 친구는 초콜릿을 손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산업 단지에서는 모든 공장이 프린터로 초콜릿을 만들거든요.”


“프린터요? 아... 3D 프린터 같은 건가요?”


“3D 프린터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맛과 모양을 코딩하면 그대로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프린터예요. 초콜릿 프린터가 도입된 이후로 저비용 다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해져서 다른 도시에 있던 군소 초콜릿 회사들은 다 문을 닫거나 산업 단지로 흡수되었어요. 쇼콜라티에 학교들도 다 문을 닫거나 산업 단지 안으로 들어가서 코딩 교육으로 커리큘럼을 바꿔서 살아남았어요. 유학 가려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할 때만 해도 이런 변화는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몰랐던 거죠. 이 친구가 입학하자마자 ‘커리큘럼 전면 개편’이라면서 하루 종일 코딩 교육만 시키더래요.”


“엄청 괴로웠겠네요.”


“그럼요. 근데 코딩보다 더 괴로웠던 건 초콜릿은 무조건 눈에 띄고 먹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아야 한다는 방침이었데요. 모든 공장과 학교가 동일하게 내세우는 방침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공장도 많고 학교도 많다 보니 경쟁이 치열했거든요. 그러니까 눈에 띄고 입을 사로잡는 초콜릿을 만들려고 난리였던 거죠. 특히 제 친구가 유학을 갔을 때는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중독성을 어떻게 넣느냐가 업계 화두였고, 당연히 모든 학교는 산학협동으로 묶여 있으니까 ‘중독성 스페셜리스트’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학교가 대부분이었겠죠. ‘행복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은은한 맛’은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고 해요.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 친구에게 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다고 다시는 애들이나 좋아하는 걸 만들 생각은 하지 말고 윈터 원더랜드에서 중산층이 보장되는 이발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그 친구의 꿈이 깨졌어요.”


“여기서는 이발소를 하면 중산층이 보장돼요?”


“아직까지는 이발소 한 군데, 미용실 한 군데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뭐가 어떻게 될 줄 누가 알겠어요. 초콜릿 프린터라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건데요. 아버님이야 그냥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은 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같다고 느끼는 분이셨고, 그 친구 입장에서는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는 게 꿈도 깨지고 자신감도 떨어진 상태에서 해볼 수 있는 합리적이고 편안한 대안이었던 거고요.


그래도 계속 미련이 남으니까 여기 와서 자주 이 상자를 보고 가곤 했어요. 한두 번 정도 시장님에게 초콜릿 공장을 만들어달라는 건의를 했다고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으니까.... 점점 그냥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거든요. 근데 방금 연락이 온 게... 수제 초콜릿에 도전하겠다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초콜릿은 역시 수제로 하나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라면서요. 너무 대단하지 않나요?”


“그러네요.”


지은은 이 초콜릿 상자 모양 꿈의 주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로이스를 알고 있다고 말하면 이번에야말로 영매 확정이 될 것 같았다. 다행히 폴리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근데 재밌는 게 뭔지 알아요?”


“뭔데요?”


“그런 경쟁 구도에서 만들어진 자극적인 초콜릿에 질린 사람들이 점점 생겼다는 거예요. 초콜릿이 자기를 조종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든다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그런 사람들을 공략하기 위해서 은은한 맛을 도입하려고 산업 단지 시장이 이 꿈을 사고 싶어 가지고... 정말 이틀에 한 번 꼴로 나한테 전화를 해서 얼마나 귀찮게 했는지 몰라요. 내가 보기엔 어차피 가지고 가봤자 시용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도로 가지고 와야 할 게 뻔한 데 말이에요.”


“네? 시용기간이 있어요?”


“네. 다른 사람의 꿈을 사가는 경우에는 우선 3개월 시용기간을 거쳐요. 법적 의무 사항이에요.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인 경우에는 3개월 동안 꿈이 서서히 투명해지다가 형태가 사라져요.”


“스며든 거군요.”


“스며든 거죠. 꿈과 맞지 않는 사람인 경우에는 3개월이 지나도 형태가 그대로 있어요. 그러면 제가 수거하러 가요.”


“우아... 정말 신기하네요.”


“진짜 욕심내는 사람들은 없어진 척하려고 막 숨기기도 하고 그러는데, 소용없어요. 형태가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진 우리 가게 POS에 다 연결되어 있는 걸.”


지은은 ‘꿈 가게 POS라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상자 옆면을 살펴보았더니 바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정말이지 이곳 윈터 원더랜드는 환상적인 와중에도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게 놀랍다. ‘복무 규정 3번과 47번이 완전히 반대인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우리 회사보다 훌륭한 걸.’


“물론... 사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요. 지은 씨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홀리돌리 바겐 스토어에서 물건을 사려면 뭐가 있어야 한다고 했죠?”


“네? 아...! 사랑이요?”


“그렇죠. 누군가의 꿈을 사려면 자기의 사랑을 가져와야 하는데...”


“저기, 저기요, 말씀 중 죄송한데요... 그... 사실 처음부터 궁금했었는데 질문할 타이밍을 놓쳤었어요.”


“뭔데요, 달링?”


“그 사랑 결제 시스템이라는 거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 그거요? 그건 <폴리 코트점> 시절에 우리 엄마가 개발한 건데... 코트 주문을 하려면 소중한 천 조각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던 거 기억해요?”


“네.”


“사람들이 가져온 소중한 천 조각을 손으로 만지면 천에 스며 있는 감정이 느껴졌데요. 가장 많이 느껴졌던 감정이 뭐였을 것 같아요?”


“글쎄요... 사랑...이었나요?”


“맞아요. 사랑이었죠. 그런데 사랑만은 아니었대요. 겉으로 보기엔 사랑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가지고 온 사람들은 소중하다고 하지만, 엄마가 손가락으로 천천히 만져보면 사랑과는 너무나 다른 게 있었데요.”


“그게 뭐였어요?”


“미련과 욕심이요.”


“미련은 표면을 대충 볼 때나 살짝 스칠 때는 사랑하고 질감이 똑같아서 착각하기 쉽지만 천천히 꾹꾹 눌러보면 아팠대요. 피부과에서 쓰는 마이크로 니들보다 살짝 더 따가운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천이 들어간 옷을 입으면 가시 방석을 입고 있는 느낌이래요.”


“욕심은요?”


“욕심은 사랑보다 더 촉감이 좋지만 미련보다도 더 고약한 녀석이라고 하더라고요. 피부에서 착 붙어서 떨어지지 않다가 점점 몸속으로 스며든대요. 그나마 표피에 있을 땐 어떻게 마음 굳게 먹고 눈 딱 감고 긁어내 버릴 수 있는데, 어영부영하다가 진피층까지 도달하면 어느새 혈관으로 침투해서 피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심장에 들러붙는 게 시간문제라네요.”


“그런데 미련도 욕심도 사랑이랑 닮아 있다는 게 무섭네요.”


“그렇죠. 그래서 엄마도 육안으로는 구별이 안 되고, 일일이 꼼꼼히 손으로 만지다가 다칠 위험이 너무 크니까 감정추출기를 만들었어요. 소중한 천 조각을 기계에 넣고 돌리면 사랑, 욕심, 미련이 추출되거든요. 이때 추출된 사랑으로 코트 값을 지불하는 거예요. 욕심과 미련은 폐기하고요.”


“그럼... 사랑인 줄 알고 가지고 왔는데 욕심이나 미련뿐이었다... 그러면 코트 주문을 못해요?”


“그럼요! 세상에 나쁜 개는 없어도 나쁜 감정은 있다고요. 걔들이 바로 그건데요! 그리고 제가 가게를 물려받을 때 기계를 개조해서, 천 뿐만 아니라 물건이나 이야기에서 감정을 추출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야기에서도요?”


“네. 소중한 추억을 녹음해서 보내면 돼요. 그리고 이제는 세 가지 감정뿐 아니라 물건이나 이야기에 담겨 있는 모든 감정을 추출할 수 있죠. 사랑이 조금 모자라도 사랑이랑 비슷한 감정의 함량도 포함해서 결재할 수 있어요.”


“아까 미련이랑 욕심은 버린다고...”


“미련이랑 욕심은 사랑이랑 겉으로만 닮은 거지 비슷한 게 아니죠.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거죠. 반면에 우정이나 의리나 신념이나... 뭐 이런 것들은 겉으로는 닮은 구석이 없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한 감정이죠. 그런 것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군요...”


지은은 호기심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마음이 살짝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만일 여기서 사고 싶은 꿈을 발견해도 살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사랑이 추출될만한 이야기가 없는 것도 슬프지만 소중히 여기는 엘피를 가져와도 미련만 잔뜩 추출될 것 같았다. 지은은 말없이 진열장 앞으로 나가가 초콜릿 상자를 원래 자리에 놓으려다가 진열장 구석에 있는 뭔가를 건드렸다. 띠링~ 하는 소리가 났다.


“아, 죄송해요, 제가 무언가를 잘못 건드렸나 봐요.”


그런데 띠링~ 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지은에게 매우 익숙한 멜로디가 시작됐다. 지은이 건드린 것은 오르골이었고, 오르골에서는 엘라 피츠제랄드의 <It’s Only A Paper Moon>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이거... 오르골인가 봐요.”


“맞아요.”


“저... 괜찮으시면 이 오르골 좀 볼 수 있을까요?”


“음... 그럴래요? 사실... 그건 깨졌다가 수리한 꿈은 아니고... 어떤 분이 특별히 맡기신 거라 잘 안 보이는 곳에 놓아둔 거긴 한데요.”


폴리는 머뭇머뭇하면서 진열장 깊숙이 팔을 집어넣어 오르골을 꺼냈다. 모습을 드러낸 오르골을 보고 지은은 깜짝 놀랐다. 오르골 위에서 <It’s Only A Paper Moon>에 맞추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은 혜원의 카페 ‘페이퍼문’의 미니어처였다. 지은은 달팽이 관을 다라 감겨오는 오르골의 멜로디와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엘라 피츠제랄드의 노래와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어린 시절 '꿈의 공간' 사이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조차 모르는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Winter Wonderland _루이스의 꿈.jpg ChatGPT가 그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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