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하고 좋은 커피를 그라인더로 적당히 갈아낸다. 거칠게 간 가루를, 거름종이를 깐 드리퍼에 톡톡 털어 넣고 커피 캐틀로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붓는다. 첫 물은 커피 가루가 적셔질 정도로, 20초 정도 뜸 들인다. 이때 커피 가루가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는데 이걸 커피 빵이라 한다. 빵이 크게 부풀어 오를수록 만족감이 크다. 나는 이 순간을 좋아한다. 이걸 보려 드립커피를 내리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종종 있을 정도다.
몇 년 전 겨울, 어머니는 양쪽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한 달이란 기간이 걸렸고, 아버지는 홀로 지내셔야 했다. 다행이라면 이층 주택에 일, 이층에 나눠 부모님과 우리 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부모님의 오랜 습관 중 하나가 식후 커피 한잔을 드시는 거였는데 당시엔 어머니가 내린 드립커피에 맛을 들인 중이었다.
독립적인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재 동안 아침만은 혼자 해 먹겠노라 하셨다. 어머니가 미리 준비해 얼려 둔 국을 꺼내고 입에 맞는 밑반찬 몇 개로 충분하다시며. 게다가 아버지의 조식은 너무 일러 내가 맞출 수 없기도 했다. 대신 매일 아침 아버지의 모닝커피를 책임졌다.
텀블러에 내린 커피를 담아 품에 안고 새벽의 차가운 공기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1층으로 내려가면 아버지는 조간신문을 읽고 계셨다.
“딸, 왔어?” 아버지의 다정한 인사를 받으며 커피잔을 꺼내고 아버지 입맛에 맞춘 커피를 쪼르르 붓고 아버지 앞에 마주 앉았다. 잔이 비워지는 동안 아버지와 나는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 백신 3차 접종이 있을 때라 백신 이야기, 홀로 입원 중인 어머니 이야기, 밤새 아버지 컨디션 이야기…. 일흔과 마흔을 훌쩍 넘머, 똑 닮은 얼굴을 한 부녀의 수다는 매일 아침 이어졌다. 어머니가 퇴원하신 날까지.
나에게 커피는 추억이고 관계다.
좋은 사람과 삶을 나눌 때 곁들여지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런 고로 특별한 이에게만 커피 한 잔을 청하고 약속한다.
“언제 커피 한잔하실래요?”라는 물음은
“당신과 추억을 나누며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요”라는 진심 어린 초대이다.
Anna Tarazevich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927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