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거의 지나 저녁 바람이 선선해진다 싶을 때 뜨개거리를 준비한다. 뜨개 도구는 상시 대기하고 있으니 실을 고르는 게 전부이긴 하다.
뭣도 모를 적엔 저렴한 실을 위주로 골랐다. 촉감과 색감이 좋으면 그만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완전히 달라졌다. 편물을 뜨면 여러 해 입는다. 손수 만들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니트와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 때문인데 저렴한 실로 뜬 옷은 금세 망가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비싸더라도 고급실을 고른다.
올해는 캐시미어에 꽂혔다. 캐시미어 함량이 높은 건 가격이 후덜덜하다. 실 값으로만 이십만 원은 너끈히 나간다. 뜨개를 방구석 골프라 부르는 게 이해된다.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나는 결국 *가공작업을 하지 않은 *콘사 형태의 실을 여러 개 구입했다.
남편은 내 고급진 취미 생활을 마뜩지 않게 여겼다. 겨울이 시작된다 싶으면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곰처럼 뜨개질을 쉬지 않고 해 대는 내 건강을 걱정했다. 여차하면 밤을 지새우니 더 그랬다.
내게 있어 뜨개질을 한다는 건,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나를 분리하는 방법이다. 특히, 온갖 생각이 난무하는 내면의 갈등에 빠져들지 않게 한다. 같은 동작이 무한 반복하는 듯 보여도 꽤 복잡한 작업인지라 쓸데없는 생각을 깊이 하기 어렵다.
내가 일한 만큼의 결과물을 얻는 일이다.
세상 살다 보면 안다. 모든 일이 내가 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뜨개는 다르다. 내가 움직인 만큼, 공을 들인 만큼 자란다. 마치 엄마 젖을 먹는 만큼 자라던 유아기의 아이처럼 말이다.
이번에 깨달은 한 가지를 말하자면 나는 보기보다 성취지향적 인간이다. 완벽한 결과물을 손에 쥘 때 느끼는 짜릿함을 뜨겁게 사랑한다. 그런 내게 뜨개는 완성된 편물이란 결과물과 그 편물을 입으며 느끼는 만족감이 몹시 짜릿하다. 친구가 “그 스웨터 어디서 산 거야?”라고 묻기라도 한다면 도파민이 샴페인처럼 터진다.
2025년 12월이 가기 전, 세 벌의 스웨터와 한 벌의 카디건, 5개의 겨울 소품을 완성했다. 엄마가 떠 준 니트게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딸, 소품을 선물 받고 아이처럼 행복해하던 지인들을 보며 더없이 행복했다.
슬슬 뜨개가 재미없어진다. 겨울 준비는 끝내고 봄맞이를 해야 할 때라고 미리 알려라도 주는 듯이…. 봄에 벌리고야 말 일이 기대된다는 듯이….
*가공작업 - 뜨개질하기 좋은 실로 형성하기 위해 실을 꼬거나 땋는 등의 작업을 해 시중에 출시한다
*콘사 - 작은 볼로 나누어 형성하기 전 큰 덩어리로 감겨 있는 실
Surene Palvie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2070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