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고 있는 일, 관계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절망적일 때가 있다. 공들인 시간과 정성을 내려놓을 때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엄마는 위대하다고 다들 말한다. 생명을 품어 키우는 일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는 그 말 안에 숨겨진 속뜻을 알기 전까지 엄마 됨을 동경했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15년간 내 삶을 지탱했던 일을 내려놓는 일, 엄마라 불리기 위한 대가였다.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고, 책임은 3배로 늘었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될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선택으로 내 인생이 뿌리째 흔들릴 줄 그때 알았더라면…. 그렇게 가볍게 하지 못할 일이었다.
MBTI로 말하자면, 나는 ENTJ로 살았다. 내향성을 잘 포장해 외향으로 꾸미고 감정을 이성으로 덮어 씌우기를 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ISFP가 되는 혹독한 과정이었다.
특히 직관으로 움직이던 나를 경험과 현재에서 얻어진 지식의 세계로 옮기는 과정은 뭐랄까, 글루텐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 글루텐을 먹고 극복해 보겠다 견디는? 그런 느낌이었다. 출산부터 내 계획과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유도분만제를 맞는 순간부터 느낀 뒤틀림과 틈을 애써 모른척하며 괜찮을 거라고, 불안을 눌렀다.
예전의 나는 굉장히 ‘이과’적 인간이었다. 하는 일이 그랬고, 15년간 커리어에 나를 맞춘 결과였다. 만족했고 좋았다.
엄마는…. 흠…. ‘문과’적 성향이 잘 맞아 보였다.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며 은유적 표현에 능한 사람이 가장 부러웠다.
내 세상에 새롭게 등장한 건 아이 하나인데, 내가 아는 모든 이해관계가 하늘과 땅이 뒤집어진 양 달라졌을 때의 황당함이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가 제대로 된 엄마로 살 수 있을까 의심하고 두려워했다.
딸은 가끔 묻는다. 자신을 양육하느라 내려놓은 커리어가 아깝지 않으냐고. 너무 큰 희생의 대가를 치른 건 아니냐며 미안해한다.
딸의 물음에 나를 돌아본다. 곰곰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떠오르는 그 시절의 고단함과 불안은 아이를 키우며 얻은 기쁨, 기대, 따뜻함과 깨달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너를 키우며 내가 비로소 인간이 되었노라 한다. 무지갱이던 나의 구원은 너로 인해 시작되었노라 고백한다. 이해되지 않던 세상의 섭리를 네가 없고서야 어찌 알았겠냐, 용서와 자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한 너는 내 삶을 완전하게 되돌려 놓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주신 귀한 보물인 것을. 엄마가 된 그 순간이 두 번은 없을, 가장 획기적인 터닝포인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