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 내내, 하연은 매일 같은 시간에 연습실 문을 열었다. 별 다를 것 없는 루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젠 그 연습실 문을 열 때마다 누군가를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은결은 늘 먼저 와 있었다.
맨 구석, 창가 근처, 그는 첼로를 꺼내어 조용히 연습을 시작했고, 하연이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 무심한 뒷모습이 점점 익숙해져 간다고 하연은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연습이 끝나고 하연이 활 끝을 정리하고 있는데, 은결의 첼로에서 낯익은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지난 학기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
하연은 고개를 들었다.
은결은 악보 없이 연주하고 있었다. 조금은 더듬거리는 손끝. 하지만 분명히 그녀가 연주했던, 그 템포와 강세를 기억하고 있는 연주였다.
그 순간, 하연은 무언가 가슴속에서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더 깊이 다가오는 일이란 걸 그때 알았다.
".... 그 걸... 어떻게?
하연은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자신이 편곡한 사랑의 슬픔을 은결이 안다는 게 놀라웠다.
은결은 잠시 연주를 멈췄다. 무릎 위에 활을 얹고 답하는 은결의 눈은 하은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네가 켰잖아. 합주 때."
하연은 말이 막혔다.
그 곡은 당시 전체 앙상블이 아닌, 솔로 연습곡이었고, 합주가 끝난 뒤 연습실에 혼자 남아 연주했던 적이 있었다.
“… 들었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히, 다시 활을 올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연주를 이어갔다.
하연은 그의 곁에 앉았다. 바이올린을 꺼내 서툰 첼로 선율 위에 익숙한 화음을 덧대어보았다.
음악은 그렇게, 둘 사이를 가로지르던 공기를 부드럽게 바꿔놓았다.
그날 이후, 둘은 자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남아 있었다.
여전히 말은 적었고 대부분의 순간은 연주로 채워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천천히 자라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말보다 먼저, 눈보다 먼저, 소리가 서로를 기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