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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Sep 09. 2023

그림에 대한 내 첫 번째 기억은 결핍이었다.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당신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선명하게 기억되는 어렸을 적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날 크레파스로 아빠 얼굴을 열심히 그렸다. 스스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정말 아빠랑 똑같이 닮은 것이 아닌가! 나는 엄마 아빠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 당시 부모님은 작은 구멍가게를 하고 계셨는데 손님으로 옆집 아줌마가 계셨다. 옆집 아줌마가 내 그림을 먼저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내뱉었다.

“에이~ 아빠랑 하나도 안 닮았네!”

충격이었다. 아빠랑 똑같이 그렸다고 자랑하고 싶어 달려갔던 나는, 콕 집어서 그 부분을 지적받았으니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오소희 작가의 “엄마의 20년”이라는 책에 동남아 등지의 어려운 아이들과 북유럽의 아이들을 비교한 인상 깊은 글이 있다. 동남아 등지의 어려운 아이들이 갖지 못한 것은 “부모, 깨끗한 집, 교육, 그리고 무수히 많은 것들이다. 이에 반해 북유럽 아이들은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딱 하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결핍”이라고 했다. 결핍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한 좋은 에너지자원이다. 그래서 목표에 대한 원동력과 끈기를 준다. 그러나 북유럽 아이들에게는 그 결핍이 부족하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나에게도 그림 그리기의 원동력은 결핍이었다.

“잘”그려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었다.

도대체 잘 그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그림일까? 화실 선생님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sns에 좋아요 버튼이 무수히 달려야만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모두 아는 고흐나 렘브란트 정도는 되어야 잘 그린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수학 답안지처럼 정답이 있는 문제라면 더 쉬웠을까? 결핍은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나를 평생 졸졸졸 쫓아다니며 마음을 공허하게 만드는 녀석이기도 했다.

그 결핍은 평생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어른이 되어 알았다. (결핍이란 단어는 ’채워지지 않음‘이라는 뜻이 있다) 5분 대기조처럼 나를 위해 계속 관심을 주고 칭찬을 해줄 수 있는 타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을 잘 그려 인정받고 싶었던 내 어릴 적 소녀를 다정히 불러본다.

‘아이야... 그때 무슨 말이 듣고 싶었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나에게 해준다.

‘정말 잘 그렸네! 아빠랑 똑같이 그렸어! 우와 진짜 그림 잘 그린다!’

배시시 웃음이 난다.

자기 사랑? 그거 별게 아니다.

오일파스텔+색연필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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