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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Sep 22. 2023

나는 그림을 그리고 나면 착해진다.

평온으로 가는 모두 다 다른 길

한동안 마음이 우울하고 답답한 적이 있었다. 지인이 그런 나를 보고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부모를 위한 집담 상담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었다. 5명 안팎의 엄마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미술심리 상담 선생님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게다가 전문가가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니 얼마나 유익한 프로그램인가! 그렇게 몇 차례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가슴이 뻥 뚫리고 발걸음엔 음악이 실렸다. 흥얼흥얼 말랑말랑해졌다. 내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이 마음 챙김 공부의 기본이고 또 종착역이라고 믿기에 만족도가 매우 컸다.


“방법”을 찾은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같이 다니던 지인과 갈등이 생겼다. 갈등은 지인이 자신의 문제임을 자각하고 사과를 해주어 원만히 해결되었지만 의아했던 것은 나의 태도다. 평소의 나라면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을 텐데 그날은 평온했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 지인의 문제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왜 내 상태가 이렇게 맑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그날 아침이 떠올랐다.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가는 날이라 새벽에 미리 일어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었다. 나 스스로 뿌듯하게 시작한 하루였다. 그 만족감이 내 몸 구석구석 알알이 스며있었다. 


‘이게 뭘까?'


나를 계속 관찰했다. 그날도 2층에서 그림을 그리고 혼자 흡족해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작은 아이가 나를 보더니 바로 물었다.


"오늘 저녁은 뭐야?"

"그냥 밥이랑 김치찌개인데"

"아.. 나 밥 안 먹을래!"


작은 아이가 반찬투정이 있어  밥을 잘 먹기로 약속을 여러 번 한 뒤였다. 평소 같으면 짜증이 올라와 잔소리 공격을 시전했을 타이밍이다. 그 날은 내 안에서 '아이가 반찬투정을 또 하니 진짜 짜증 난다. 매번 너무 힘들다." 하는 마음이 들렸다.  멈춰졌다. 나를 보았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오늘은 김치찌개 밖에 없어. 내일은 네가 먹고 싶은 것 해줄게 ~뭐해줄까?"

"메추리알!!"

"그래 알았어! 내일 해줄게! 오늘은 김치찌개 맛있게 먹자"

"치... 알았어"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바라보는 내’가 되어있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마음 챙김 수업보다 작업실에서 내 글을 쓰고  내 그림 한 장 그리는 것이 나의 일상을 평온하게 하는구나! 나 스스로 나에 대해 유능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나 스스로를 기분 좋게 하는구나!


“나”라는 망망대해에서 작은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것 같아 조금은 기쁘다.





오일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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